"저 선배 존나호구야. 나같으면 저렇게 안산다. 애새끼들도 대단해. 저렇게 호구인걸 어떻게 알고 부추겨서 기어코 과대시켰는지."
"..."
"나는 딱히 내할일하느라 신경 안쓰는데 볼 때마다 안쓰럽긴 하더라. 그래도 교수가 이뻐해주니까 부럽긴 하다만."

하도 과대과대해대서 애들도 저 선배 이름 모를거야 아마. 이...이 뭐시기라고 했는데 나도 가물가물하다. 이홍빈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 식어버린 커피를 쭉 들이킨다. 야, 뭐 소주냐. 고작 교양주제에 조별과제 때문에 게임 잉여짓도 못하고 남자 둘이서 노트북 붙잡고 끙끙거리기를 4시간 남짓. 한거라곤 홍빈이 작명한 존나 있어보인다는 우기고 우긴 조별과제 타이틀밖에 없다. 그럴 거면 LOL을 몇판 때리지. 야, 김랍.학연이형 아직도 연락안되냐? 존나 술좀 작작 처마시지 꼭 술자리는 있는데 없는데 다 껴서 난리야. 과제에 진척이 없으니 괜히 응급실가있는 차학연에게 신경질이다. 학연이형 알면 동아리방에 발가벗겨져서 걸려있을지도 모를소리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홍빈도 술먹고 죽어있다가 약속시간 3시간 후에 오지 않았나. 말해봤자 소심하다고 또 놀릴게 뻔하니 말하지 말자. 그래놓고서는 또 자기가 가장 노트북 성능이 좋다면서 괜히 질책에서 피하려고 든 것까지 생각하던 원식이 팔랑팔랑 뛰어가는 호구 과대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흘겨봤다. 이홍빈이 그러니까 뛰어가는 모습도 호구같다. 그러다가 누구랑 툭 부딪히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급하게 사과한다. 별로 부딪힌것도 아닌데 거 참 요란하게 사과한다.

저렇게 착하게 살면 좋은 게 있을까. 착해도 호구소리 듣는 시대에 흥부놀부같은 건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 저 나이 먹도록 깨닫지 못하는건 인지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가식 둘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간혹가다 학점에 목숨거는 애들이 하는 짓 같아서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진 않았다. 어쨋든 같은 과가 아니니 다행이지. 옆에서는 알없는 뿔테를 쓰고 바깥을 인식하며 어떻게 치면 존나멋있게 치는 것 처럼 보일까 궁리하는 이홍빈이 이쁜여자만 지나가면 의미없는 노래가사를 썼다가 지웠다가 병신짓을 한다. 그럴거면 직접 헌팅하러 나가던가 꼭 저렇게 여자들이 먼저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면 자기는 자기좋다는 여자를 만나고 싶댄다. 뭔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홍빈이 두 줄째 써내려갈 때 즈음 카페문 종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존나 미안."
"형 괜찮아요?"
"아니, 나 여기서 뒈질것같애. 홍빈아 여기 묫자리좀 파줘."

파란다고 진짜 파는 시늉하는 이홍빈도 존나병신이 따로 없다. 저게 방금전에 술좀 작작처먹으라고 깐새끼가 맞나 싶다. 원식이 한숨을 쉬며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조별과제는 벌써 종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자취방에서 게임이나 때릴걸 그랬다. 이홍빈이 존나 쌈빡한걸 정했다면서 불나게 달려왔더니 고작 존나 웅장해보이는 제목이었어. 시발. 그래도 실세 차학연이 왔으니 기분이 꾸릿한 원식은 아무말도 못한다. 사람 저래보여도 화나면 존나 무서운 형이라서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는 못한다. 그래. 원식도 처음에는 학연이 그 과대처럼 호구가 될 것 같디고 느꼈었다. 차학연이 같은 조였던 프리라이더인 두 사람에게 빅엿을 주자 그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항의를 했고 그 자리에서 미친듯한 말빨로 강의실 전체를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추억 때문인지 김원식과 이홍빈 두 사람 빼고는 다들 학연을 무서워했다. 평소에도 싹싹하게 인기많은 이홍빈은 차학연이 좀 많이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랬고 김원식은 딱히 차학연을 적으로 돌려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느껴서 지금까지 붙어있다. 학연의 신경에만 거슬리지 않으면 교수님들과도 친한 학연때문에 덕볼일이 많다는 걸 다른 놈들은 모를테지. 그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90퍼는 눈칫밥으로 산다고 하는거다.

학연이 오자 병신처럼 제목밖에 정해지지 않은 과제 계획서가 얼추 자리잡았다. ppt는 컴퓨터폐인 이홍빈, 발표 김원식, 자료조사와 협상은 차학연 그리고 프리라이더 두 사람. 차학연이 어떻게 엿을 먹일지는 아직 감도 잡히지 않는다. 신입생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슬슬 빼는 놈 하나랑, 정말 안타깝게도 그 유명한 일화를 모르며 평소에 티비에도 나올만큼 이뻐서 동기들 무시하고 다니는 여학생 하나가 귀여운 얼굴로 목이 내쳐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언성을 높힌 차학연은 B+를 받았지만 권총에 학고까지 빅엿을 먹은 전설의 차학연의 노예들은 한 놈은 자퇴까지 했었다. 학연은 안면붕괴하며 통쾌해하더라, 이세상에 저따위로 날로 처먹는 새끼는 박멸해버려야한다고. 거기다 환상의 ppt로 A+의 전적이 있는 이홍빈은 벌써부터 투지에 불타고 있다. 요즘에는 사이코들이 알고보면 천재더라. 원식은 이번 발표로 분명 유명해질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 2조 발표를 마치며 교수님께서 팀원들의 성실도를 학점에 적극 반영한다고 동의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들이 이번에는 원식의 앞에 있었다. 저번에는 다른 조에 있어서 그 진귀한 장관을 제3자로 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많이 달랐다. 이 멘트를 직접 할 수 있다는 게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앞에 앉아있는 프리라이더들이 화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번에는 좀 노멀하게 간다 싶었더니... 원식의 고개가 화면으로 향했다. 방금 전 분명히 ppt였던 화면이 갑자기 튀어나온 화면 속 이홍빈 손에 들려있었다. 이홍빈이 만들어온 건 ppt가 아니라 영상인가. 파워포인트말고 이상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길래 그냥 뷰어의 일종인가 싶었는데 역시 전설의 이홍빈 차학연콤비는 도저히 이길 사람이 없었다. 이홍빈이 ppt화면을 탈탈탈 털더니 두 사람의 이름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손가락으로 이름을 집어서 요리조리 보더니 뭐야이건. 하고 뒤로 던진다. 그러고서는 하는 말이.

ㅡ 쌍권총 빵빵!!

분명 한 이틀 연락이 두절되었던 그 때 둘이서 이런 대작을 찍었을거다. 컴퓨터그래픽이라니. 이제는 엿먹이는 법도 상상을 초월했다. 어디서 이런 인재 안데려가고 뭐하는지 강의실이 웅성대며 그 두사람을 흘깃흘깃보고 있다. 신입생은 잔뜩 쪽팔려서 얼굴을 붉히며 욕하고 있고, 얼굴 좀 반반한 여자애는 얼굴이 빨개져서 벌떡 일어났다. 오 혹시 그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원식의 눈두덩이가 과도하게 벌어졌다. 나는 자료조사까지 다 했는데 무슨 소리냐는 말에 학연이 코웃음을 쳤다. 자료조사? 썬칩먹고 입천장까진소리하네. 니 호구들 중 한명이 옛날에 자기 발표 조사했던거 그대로 가져다주니까 좋다고 집어먹은게 어디서 교수님 뺨때리는소리? CF하나 찍었다고 연예인이라고 똥꼬치마나 입으면서 뿌잉뿌잉거리면 우리가 호구처럼 너한테 학점헌납할줄암? 니 호구짓할바에는 정택운한테 키스하겠다. 쪽팔리면 가만히 앉아서 반성하는 표정으로 있어야지 다 너한테 휘둘릴거라고 생각하지마. 나중에 니 얼굴에 주름 자글자글할때 깨달아라. 아이고, 조별과제 열심히할걸.

동기들도 입에 오르내리는걸 꺼려하는 택운이 학연의 입에서 나오자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정택운이라하면 경찰행정학과의 구원자로서 날고긴다는 운동계열놈들도 정작 정택운에게는 낑낑거렸다. 싸움하다가 크게 다치는 바람에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하고, 2인조 무장강도를 제압해 시민상까지 받은 사람한테 키스라니. 그냥 죽음을 줘. 여자도 익히 알고 있다. 싸움에 도가 텄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반반해서 꼬실려다가 그 정승같은 태도에 얼마 못가서 포기해버렸으니까. 여학생은 기어코 눈물을 보였지만 아무도 여자의 편에 서질 못했다. 차학연이 정택운과 친구라는 사실도 다들 익히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깡패같은 태도로 나온다고 해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걸. 차학연은 교수님을 한 번 돌아보면서 어깨를 으쓱 했다. 제가 때리기라도 했어요? 교수님은 그런 학연이 어이없고도 귀엽다. 발표할 때 얼굴만봐도 프리라이더들한테 얼마나 휘둘렸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지겹도록 봤는데 차학연은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과 말빨로 상대방을 가볍게 망신시킨다. 저건 교수라도 못말린다. 실력으로 지면 이길때까지 실력을 키우고, 상대방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은 흡사 짐승과 비슷했다.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다른조 발표도 못할테니 수업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교수님! 저 너무 억울해요!"
"..."
"여자혼자 저 시커먼 남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세요?"

저건 뭐 반성할 기미도 안 보이네. 그래 넌 답이 없다. 이홍빈이 여자를 향해 웃더니 또 컴퓨터를 두드렸다. 그래 털어서 안나오는 경우는 없지. 원식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홍빈이 하는 걸 지켜봤다. 거대한 스크린화면으로 카카오톡 화면이 보이고, 화려한 대화기록도 뜬다. 모두들 멍하니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여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쩔줄 몰라한다. 차학연은 새까만게 후배들 술자리에 괜히 껴서 기분 다 망쳐놓는다더라, 이번에 조별과제 같이하는데 알고보면 자기한테 홀려서 지가 다 해버릴 호구라더라. 이홍빈은 오타쿠같은게 얼굴은 존나 잘생겨서 얼굴이 재능낭비라더라. 근데 왜 나는 없냐? 원식이 발끈해서 여자를 째려봤다. 하긴 워낙 개성이 뚜렷한 두 사람들 사이에서 원식이 튈리가 만무하지만 괜히 서운하다. 그렇게도 존재감이 없나 괜히 고민했다.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원식은 이 싸움에서 얻은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깨달은 건 자기의 나노분자만큼 작은 존재감 정도. 비루한 원식의 뒤에서는 학연이 홍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우리 콩 잘 했다. 그런데 이런 거 남발하면 잡혀가요 안잡혀가요? 아수라장이 된 강의실 안에 제대로 정신을 잡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학점은 날라간건가. 이 번에 망하면 재수강인데. 이홍빈은 집에 있는 게 적적하다면서 왕창 재능낭비중이지만 원식은 LOL의 노예인만큼 최소한의 학점으로 효율적인 시간분배! 알뜰한 강의!를 외치며 시간표를 짰더랬다. 둘 때문에 재수강이면 얼굴 안볼거야.











"와, 아직 시대좋네. 형이 한 번 쑤셔줄까?"
"..."
"우리 랍이 그나마 재환이랑 같은조라서 다행이다."

미안하면 그 입좀 닥쳐요. 카페에 앉아있다가 시간이 되자 가방을 들고 일어선 원식이 무표정으로 카페를 나섰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전원이 최하점을 받는 사태가 났고 차학연은 아잉, 교수님 왜 이러시나요. 하며 원식의 눈치를 봤다. 기어코 년초부터 학교 표지모델을 하기로 되어있던 여학생이 자퇴서를 내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전교에 소문이 퍼지고 교수마저 곤란한 상황에 처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학점간당간당한 김원식 정도는 살려줄줄 알았다. 이건 뭐 엿을 먹이려다 빅엿을 먹는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호구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재환이라는 선배랑 같은 조가 되어버려 원식은 혹시 올해 자신에게 마가 낀건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더랬다. 솔직히 프리라이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만은 이재환은 굳이 자기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사서하는 타입이라 떡밥만 잘 던져주면 낑낑거리면서 자기 일도 잘하고 다른 팀원들 일도 호구처럼 잘 받아서 하고. 시발. 짜증난다. 사람이 어쩜그렇게 미련해?

팀이 정해지고 이제부터 조별과제를 함께할 팀원들의 얼굴을 대면함과 동시에 원식을 제외한 팀원들의 얼굴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활짝 피었다. 아싸, 우리팀에 호구있다! 하는 표정에 원식만 썩창이 되었더랬지. 재환이오빠가 나이도 많으시고 (호구)경험도 많으시니까 조장은 재환이오빠로 해요! 와아아아 그래 호구팀은 이렇게 일사천리다. 거기다 재환과 원식을 제외하고 팀원 3명이 여자였다. 물론 존재감 없는 원식은 그 전설의 차학연,이홍빈콤비의 빅엿프로젝트의 발표자였던 것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여자들의 눈에는 그냥 한 놈은 전설의 호구새끼, 한 놈은 소심한 호구새끼로 보일 게 뻔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도 되죠? 으,응 얘들아 종이에 과랑 이름이랑 폰번호좀 적고가자. 그 바보같은 대처에 원식은 한숨을 쉬며 제일 처음으로 이름과 학과, 번호를 적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번에 학점 안되면 개망인데 시발. 이홍빈 학점 뺏어오고 싶다. LOL한판 붙어서 이기면 재수강 면제 이런거 없나?

원식이 10분을 걸어 도착한 카페에는 어벙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재환을 발견했다. 그럼 그렇지. 무표정으로 인사하고 맞은편에 앉자 재환이 방긋방긋 웃으며 한 30분 전에 도착해서 노트북으로 뼈대 한 번 잡아봤다며 노트북을 원식에게 돌렸다. 네 괜찮아요 이렇게 가죠. 건성으로 대답하자 무안해진 재환이 그으래? 하며 다시 노트북을 자기쪽으로 돌렸다. 겉보기에도 무뚝뚝해보이는 원식 때문인지 재환은 평소에 짓던 밝은 표정을 못했다. 온갖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데 대뜸 재환이 손바닥을 쳤다.

"아 맞다. 다들 일이 있어서 못온대."
"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으응?"
"잠시만요."

원식이 전화번호를 뒤져 학연의 번호를 찾았다. 이 할아버지야. 형때문에 3마리 걸렸어. 어쩔거야. 앞뒤생각안하고 싸지르고보는 원식의 목소리에 쫄은 재환이 눈을 데골데골 굴렸다. 무,무서운 후배다. 잔뜩 눈치를 보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ㅡ 캬캬캬캬컄캬캬크크킄크크
"어쩔거에요."
ㅡ 야. 진짜 너 운한번 대단하다. 어짜피 재환이 있으니까 호구짓좀 하면 기본은 받어. 재환이 저새끼 저래보여도 과탑이야.
"......"
ㅡ 그렇다고 너도 내빼버리면 이홍빈시켜서 니 나체사진 학과홈페이지 메인에 걸어버릴거야. 알았 우리 랍?
"끊어요."
ㅡ 그으래, 재환이한테 안부좀 전해주고. 홍홍홍.

호구짓을 알면서도 다 하라고? 절대 그러고싶은 맘이 없다. 원식이 여학생들에게 일일이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안나오냐 왜 하필이면 오늘이냐 정말 나올 수 있는 시간을 정해라. 투다다다닥 엄지손가락의 속도가 빛의 속도다. 분명 여학생들은 생각치도 못한 복병을 만나 지들끼리 난리가 났겠지. 과제를 하는 척 흘깃흘깃 쳐다보는 재환의 눈빛을 느끼고 그를 번쩍 올려다보자 재환이 놀라서 의자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아,아하하하. 이름이 김원식이라고 했지? 괜히 할 말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원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만나자마자 묻고싶은게 산더미였긴 했지만 굳이 꺼내고싶지 않았다. 어짜피 이번학기 수강만 끝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같아서. 재환이 어색하게 웃다가 갑자기 창 밖으로 원식이 올때와 같은 표정으로 또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혹시 같은 조원일까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원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시발 전설의 스트리트파이터가 나한테 걸어오고 있어! 손에 든 책은 흡사 흉기와도 같아서 그 모서리를 자기도모르게 응시하게 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중압감이다. 사실 원식은 전설의 정택운을 오늘 처음 봤다. 그것도 제복을 입은 훤칠한 키의 택운이 저벅저벅 다가오자 잔뜩 겁먹은 원식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애써 시선을 피했다.

"니가 찾던거."
"으아, 고마워어! 내가 다음에 꼭 밥사줄게!"
"됐어."
"잘가 택운아!"

짧,짧지만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택운은 원식에게 흡사 상상의 동물 해태만큼의 인물이었다. 인간살상무기라느니, 경찰도 무서워한다느니, 방학마다 산으로 수행간다는 이딴 병신같은 헛소문 말고 실물을 확인하고 싶었던 터라 그의 뒷모습마저 한 순간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이홍빈한테 존나 자랑해야지. 원식이 황홀해있는동안 재환은 택운이 가져다준 서적을 들고 흐뭇하게 웃었다. 이것만 있으면 발표는 무리없이 끝낼 수 있겠다싶었다. 무심해도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매번 도움만 받아서 미안하다. 그 새 또 핸드폰을 들어 택운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재환이 멍해있는 원식을 물끄러미 봤다. 왜저러지? 분명 방금전에는 강철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을듯한 표정이었건만 지금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택운이가 인기가 좀 많아야지. 김원식도 정택운이 우상인가보다.

오늘은 대충 어떻게할건지 뼈대만 좀 잡아보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순진하게 정리한 재환이 활짝 웃으며 노트북을 두드렸다. 저 형은 정말 순진한건가 멍청한건가.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한두명은 협박으로 커버할 수는 있지만, 차라리 각자 역할을 통보하는게 강제적으로 참여와 꼬투리거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은가. 원식이 한숨을 쉬며 재환이 끄적여놓은 메모를 내려다보다 펜을 들었다.

"제가 발표랑 자료조사할테니까 형은 ppt만들어주세요. 다른사람들도 정확하게 분량나눠서 자료조사니까 뭐라도 빠지면 그때그때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으,응..."

이 개미지옥같은 강의를 재수강하는 놈은 자기 하나밖에 없을거다. 이 사실만 해도 충분히 절망스러운데 옆에는 죄다 쉽게 졸업하고싶은 놈들만 바글바글했다. 너희들만 쉽게 졸업하고 싶은건줄 아나. 이 몸도 집에서 컵라면이나 시켜먹으면서 LOL하고 이 한몸 순탄하게 졸업하고싶은 마음이 산더미같긴 매한가지라구.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이 학교를 빛내서 후배들에게 갓핸드라고 불리우며 대기업에 취직을 해보이겠다!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이 현실에 만족하며 평범한 직장에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살고싶었다. 그렇다고 김원식 기준이 남들보다 눈이 높은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새끼챙겨먹고 등만 따숩게 지내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그니까 일단은.

은근 재환의 정보는 빠삭하게 꿰고 있는 학연은 재환이 졸업 후 교수님 추천으로 어디 유명한 모 회사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며 재환과 친해지기를 바랬다. 성격이 워낙 순진해서 남들한테 이리치이고 저리치여도 애가 한번 마음먹으면 남들의 배는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고 한다던데. 원식이 보기에는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갓 졸업한 신입생처럼 보였다. 얼굴도 노안도 아니고 풍기는 이미지는 김원식이 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원식은 한숨을 쉬며 이 여자 3인방을 깨끗하게 처리해버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자료조사할때 어디 인용했다고해서 다른사람꺼 그대로 가져오거나 돈주고 사온거 들키면 죄다 빼버리갔어 내래 간나쉐키들이 나를 호구로 보다간 좌승총으로 대갈빡을 갈겨주갔어.












"다시해와."
ㅡ 아니, 왜 해온걸 다시해오라는거야? 조장은 재환이오빤데, 니가 뭔데 갑자기...
"끊는다. 다시해오라면 해와. 그 자료 얼마냐?"
ㅡ ...
"사이좋게 끝내자. 끊는다."

오올...김랍 이 악물었네.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학연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오모오모거렸다. 아오, 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형은 안바빠요? 원식이 짜증내며 묻자 학연이 해보자 이거냐? 하며 웃었다. 아차차, 이 형한테 깝칠 군번이 못되지. 원식이 깨갱 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방금전에 그 패기돋는 기세는 어디가고 소금쟁이가 나왔나 싶어 학연이 원식의 등을 토닥였다. 으휴, 귀찮은거 이겨내지도 못할 성격이면서 굳이 이재환 역할을 자기가 하는 걸 보면 이번에는 손해 안보려고 눈에 쌍심지를 켰나보다. 홍빈과 학연옆에 붙어있다가 꼭 그들에게 전염된 것 같았다.

재환은 학연과 원식의 사이에 껴서 괜히 미안해져 같이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조장노릇을 못해서 애꿎은 원식만 스트레스받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원래 싫은소리를 한 적이 없어서 자기가 화를 내도 그냥 조곤조곤 다그치는 것 같아 오히려 상대방이 더 얕잡아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내가 조금 희생을 해서라도 충돌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학연이 많이 아끼는 것 같은 후배를 힘들게 만들어서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걱정해줘도 원식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니 그냥 열심히만 해주시면 된다고만 했다. 그러니까 더 미안한게 그냥 자기가 다 해주고 싶었다.

존나 호구 오브 호구의 랍켄을 보고싶은데 머리속에는 겜밖에 안들어있어서 만사가 귀찮아 호구짓하는 원시기랑 과탑인데 호구로 유명한 뎨화니 보고싶은데... 이거 쓸 때는 차학연 이홍빈같은 또라이 천재 많을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또라이가많지 저렇게 조별과제에서 난리치는 놈 못봄ㅎ 파멸의 조별과제 시발 살려달라고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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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ip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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