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팔뚝에 튄 피를 벌벌 떨며 거침없이 닦아냈다. 지민을 두렵다는 듯 곁눈질로 확인만 했지 정확히 바라보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지만 지민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몇시간 전 까지만 해도 남자의 온 몸을 돌며 삶을 외쳤던 그 피가 여자아이의 팔뚝에 흔적처럼 세겨졌다. 지민은 해지기 전 어느 방향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바야르의 뒷 모습을 응시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한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05: 사막의 남자










"이제 바로 돌아갈거에요 젠?"
"...네."
"아부심벨축제가 3일 뒤에요. 같이 봤음 했는데 아쉬워요."

지민은 바야르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일정을 잡고 왔습니다. 그의 단호한 말에 바야르가 어쩔 수 없다면서 시선을 멀어지는 모래바람 속으로 던졌다. 이 장소 자체가 가시방석이었다. 여유부리면서 축제따위를 구경하고 돌아다닐 수 있을리가.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여자아이와 섭섭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바야르를 응시하다 이내 눈을 감고 애써 무시해버렸다. 사람을 한 순간에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그러나 본인이 입만 다물고 바로 공항으로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이 죄책감도 전부 사라지리라.

젠, 잠시 멈췄다가 간대요. 그의 말에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물칸에서 내린 바야르가 앞좌석으로 향하자 아이는 지민에게서 더 멀직하게 떨어졌다. 괜히 주머니에 있던 총자루를 상자 속으로 넣었다. 이미 죽일 수 있다는 걸 다 보여줘 놓고서는 이제와서 배려하는 꼴이라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를 어떻게 대할 지 몰랐다. 검게 그을린 피부를 천으로 더욱 가리며 벌벌떠는 것이 조금은 안쓰러워서 지민도 칸 안쪽으로 더 멀찍이 떨어져 화물 칸 깊숙한 곳에 앉았다. 그러자 운전석 쪽에서 격양된 바야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양으로봐서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민이 바야르가 올라타자마자 다시 차가 출발하듯 시동을 거는 걸 확인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했지만 그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한 번 시동이 꺼지고 이번에는 운전석에서 사람이 나와 화물칸으로 직접 다가왔다. 남자는 짖은 눈썹을 씰룩이며 손가락으로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바야르는 더욱 단호하게 거절하며 화를 냈고 몇 마디 주고받다가 다시 그가 돌아갔다.

"무슨 일 있는것 같은데, 뭡니까."
"저 미친자식이..."

바야르의 시선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분명 가는 길에 겁탈하겠다는 것이었다. 새로 들여온 놈이라 이런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원할 줄은 몰랐어요. 그의 말에 지민이 그냥 운전수의 머리통을 갈겨버릴 걸 후회했다. 아이는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줄 아는지 방금전부터 혼자 조용히 울고 있었다. 아이의 인생은 암울했다. 가족에게서부터 팔려와서 사람이 머리에 구멍이나서 죽는 것 부터 남자가 저를 겁탈하려고 흥분하는 모습까지 전부 지켜볼 수 밖에.

바야르는 저기압 상태로 저 멀리있는 지평선만 바라봤다. 지민도 이렇게 밖에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돈을 받고 여자아이를 사고팔고, 돈을 받고 누군가의 쌍둥이를 죽여버리고. 지금 누가 누구의 머리를 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거지. 끓어오르는 자괴감에 입 안의 살을 꽉 물었다.

"Masha'allah!!"

저 멀리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민이 눈을 찌푸리며 밖을 살폈다. 바야르가 저 먼 곳을 집중하듯 바라보더니 화물칸 안쪽으로 가서 벽을 미친듯이 두드렸다. 상황이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더라니 설상가상으로 갱 집단이 몰려오는 소리라고 했다. 바야르가 잔뜩 흥분하며 총을 꺼내들었다. 운전석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속도를 내며 어떻게든 그들을 따돌리려고 했다. 뒤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녀석들의 그림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을거에요. 이런 일이 한 두번 아니었어요."
"공격합니까?"
"그냥 지나가는 거였으면 좋겠네요. 지켜봅시다."

바야르가 여자아이를 물탱크 뒤로 숨겼다.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는 걸 들키면 빼앗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맹렬하게 쫓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민도 곁눈질로 그녀를 쫓으며 총을 들었다. 천막에 가려진 사각지대에 등을 대고 숨은 바야르는 반대변의 지민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고개를 살짝 내어 밖을 살폈다.

"젠장. 계속 쫓아와요."
"..."
"젠, 총 잘 쏴요?"





-






"로이 여기에 없는데."
"알려줘."
"..."
"로이가 왜 날 피하는거야."

파이가 프스스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본 석진이 한쪽 눈을 찌푸렸다. 현관문에 선 파이는 계단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유스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반사적으로 유스가 으르렁거리듯 파이에게로 다가왔다. 미묘하게 비웃는 것 같은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저 머리속에는 어떤 악마가 자리잡고 있을까.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잡고 물어지는 것 보다 석진은 파이에게 향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어쩌면 자포자기였는지도. 마음같아서는 지금 당장 지민을 제 곁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이대로 물러서면 놈에게 지민이를 영원히 빼앗겨버릴 것 같아서.

파이도 본인이 우위라는 것을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면상을 갈기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한참을 유스를 마주보고 서서 웃고 있던 파이가 옆에 둔 짐가방을 손에 들었다. 이제 용건 끝났으면 나 가도 될까? 로이한테 가야되거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진이 반응했다. 때릴 줄 알았으나 유스에게 멱살이 붙잡힌 파이가 눈이 커져 석진을 바라봤다.

"박지민 어디있어."
"Кто ты?"

유스가 기억을 잃으면서 멍청해진거야? 파이가 그대로 놀란 눈을 한 채로 석진에게 딸려갔다. 마침 2층에서 지민의 짐을 가지고 내려오던 루크가 그것을 보더니 욕을 중얼거렸다. 성큼성큼 걸어가서 파이를 잡은 유스의 손을 매섭게 내려치며 루크가 으르렁거렸다. 넌 누군데 파이를 건드리는거야.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처럼 으르렁거리는 루크에게 짐가방을 던진 파이가 붉게 달아오른 목을 천천히 쓸며 인상을 찌푸렸다. 루크, 괜찮으니까 먼저 타 있어. 그의 말에 루크가 마지못해 물러나 받아든 짐을 들고 차로 향했다. 파이가 걱정되는건지 계속 뒤돌아 석진을 흘겼다.

그렇게 물어도 난 몰라. 옛정을 생각해서 현관도 열어줬었다구. 파이가 떨어진 짐가방을 고쳐들었다. 네가 기억이 돌아왔다고 해도 로이가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넌 뭘 그렇게 필사적이야? 로이가 너 때문에 인생을 한방에 날려먹은거? 아니면 네 옆을 떠나서? 뭐가됐든 넌 지금 박지민한테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야.

"그래서 난 너를 이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도 있어."

파이가 옛날의 기억처럼 섬득하게 웃었다.

"좆같은 소리하지마."
"좆같은 소리?"
"..."
"그건 너지. 기억이 안 나면 닥치고 모르는 척 살아. 그게 너한테 로이를 살리는 일이 될테니까."

파이가 석진의 어깨를 툭- 치고 옆으로 비켜나갔다.
파이와 루크가 탄 차가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을 눈으로 쫓던 석진이 주먹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눈 앞에 있는 그에게 안달이 났는데 이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이렇게도 괴로운 줄은 모르고 있었다. 멀리 떠나는 것 처럼 보이는 놈들의 뒤를 쫓아봤자 결국은 그 빌어먹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상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었다. 정말 모르는 척 사는 게 지민을 위한 길일까. 답답한 심장 언저리를 퍽퍽 내려치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석진은 햄프셔에 있는 내내 로이의 집 앞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미 그가 없는 집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 그가 잠시 왔다 갔을까 그 조그만 희망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물고 몇 시간을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밤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혹시 제가 없는 밤중에 다녀가진 않을까 다시 되돌아가보는 그 길은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그 해맑던 애가 자신과 연관된 무엇 때문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을까. 정말 이유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힘겹지는 않았을텐데. 익숙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엘레나는 본인에게 한 마디 말 없이 죽어버렸고 그는 자신의 집착이 힘겨웠던 걸까.

이제는 보스턴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돌아온 기억인데, 그 기억들이 자신을 밀어내다니. 웃음밖에 나오는게 없었다. 6년이란 시간이 길다고 느낀 적 없었는데, 생각보다 길어서 그 그리움을 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늦었군."
"..."

어둠속에 한 남자가 지민의 집을 보고 중얼거렸다. 남자는 칠흑같은 검정색 수트를 입고 있으면서 그와는 상반된 흰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일까. 모든 걸 채념한듯 멍하니 벽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보는 걸 알아챈 남자는 멀리서도 석진이 보이는지 우두커니 서서 석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매시운 눈빛이 생각보다 더 날카롭다고 느꼈다.

"기억이 난 건가."

남자는 석진이 잘 보이지 않을텐데도 물었다. 그도 파이처럼 기억 속에 한 사람이었을까. 남자가 석진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오자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6년 전 엘레나와 함께 차를 타던 남자였다. 남자의 눈빛이 석진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얼굴에 머무를 때 까지. 호흡이 가빠지며 몸에서 열이 났다. 남자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석진을 관찰하듯 훑었다. 그의 눈빛에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인상이 더욱 선명하게 박혀들어왔다.

엘레나가 왜 죽었는지 다 알까? 아니면 납치당했던 그 정황들 모두 다? 당장이라도 따지듯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지만 그가 누구인줄 알고 함부로 물을 수도 없었다. 6년 전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어떤 일을 했든 지금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지만 만에하나 지민을 처리하러 온 자일 경우에는 말이 달라진다. 차라리 여기에서 죽어버리는 것도 낫다 싶었다. 석진도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씰룩였다. 가까이서 보자 그의 머리칼이 우주처럼 새카만 색이었다. 남자도 동양인이다.

"기억이 다 난다고 하면 어쩔거지?"
"...아니. 넌 기억하지 못해."
"..."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 하다가 입을 닫았다. 그걸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거지? 석진의 물음에 남자는 한참이고 말이 없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혹시 다시 기억을 찾고 싶은 건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다. 아무도 순순히 옛날의 기억을 꺼내놓는 이가 없이 2년의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시간동안 잘못 걸어왔던 길을 처음부터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의 정체성이자 모든 것을 비틀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 석진은 얼마 태우지 못한 담배를 지져서 꺼버리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다 알고 있어?"
"글쎄."

이 눈빛의 의미를 모르겠다. 한치의 흥미도 없다는 표정에서도 석진의 눈을 피하지 않는 남자는 이제 석진의 과거와 연관된 유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생이 뒤바뀌어버린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정 그렇게 괴로우면,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게 너한테는 편해. 그대신 옛정을 생각해서 내가 선택권을 줄게."
"..."
"선택해."
"..."
"네 목숨인지, 로이인지."





-





앞 타이어 펑크로 급정거하던 화물차가 옆으로 한바퀴 구르며 지민과 바야르를 지면으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찢어진 어깨를 붙잡고 금방 정신차린 지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자아이가 정신을 잃고 아직 화물칸 안에 있는 듯 싶었다. 화물차가 전복되자 갱들은 환호성을 내뱉으며 쓰러진 바야르와 지민의 주위를 맴돌았다. 빌어먹을 놈들. 만약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큰일이었다.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져있는 바야르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혼자 녀석들을 상대하기에는 어깨의 상처가 컸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여기에서 죽을 운명인것 같아서 체념했다. 지민은 그나마 들고 있던 권총을 놓았다. 그들이 해달라고 하는 대로 해 주면 바야르라도 살려 주겠지. 지민은 관자놀이에 바짝 닿아있는 총구의 단단한 감촉을 느끼며 그들에게 양쪽 팔이 뒤로 묶여 포박당했다. 찢어진 상처가 더욱 벌어지며 극심한 고통이 찿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바야르도 마찬가지로 팔다리를 묶여 지민과 함께 모래 바닥에 굴렀다. 무슨 말인지도 유추할 수 없는 언어로 소리치며 지민을 당장이라도 죽일 듯 몰아세웠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오히려 더 차분해진 지민이 신기한지 놈들 중 한 명은 지민의 눈 바로 앞에 쭈그려앉아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 죽일거야.

영어를 할 줄 아는 놈이 있는 건가? 그들을 올려다봤지만 아마 아는 단어랍시고 짓거려댄 것 같았다. 지민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며 신음하던 바야르가 그제서야 희미하게 눈을 뜨며 깨어났다. 정신이 듭니까? 지민이 식은땀을 흘리며 바야르를 불렀다. 제 팔다리가 포박되어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인지한 바야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놈들을 노려봤다. 평소에는 겁 많아 보였던 그는 의외로 성깔이 있는 듯 했다.

"마살루!"

바야르가 소리치자 놈들이 그를 돌아봤다. 두통 때문에 찡한 머리를 느끼며 지민도 바야르를 올려다보자 그는 마치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죽일 수 있을 것 처럼 놈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인지 놈들의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죄다 깎아먹었지만 바야르의 목소리를 듣던 놈들이 눈빛이 달라지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살루가 대단한 종교인지, 사람인지는 모르겠다는 게 지민으로서는 치명적이었지만 '마살루'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놈들이 지민과 바야르의 밧줄을 풀어준다. 지민은 말없이 그들을 노려봤다.

"우리는 마살루의 여자를 운반하는 도중이었던거에요. 알겠죠?"
"마살루가 뭡니까?"
"이 일대에서 제일 큰 세력이에요. 다른 갱들은 건들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자기들것을 건들면 모조리 다 죽여버린다고 알려진것으로도 유명하죠."
"..."
"일단. 목숨은 건진 것 같은데 앞으로가 문제에요."

태형이 항상 돌아오는 날이면 입에 달고다녔던 말이 있었다. 타지에서 개고생이라고. 그의 말이 맞았다. 태양이 어디 그늘도 없이 그대로 내리쬐는 사막 아래서 말그대로 고생이었다. 쌍둥이를 죽인 남자를 도와주게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지민은 자의든 타의든 살아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죽지 않으리라. 죽어도 바야르손에서 죽는 것이 차라리 더 편하겠지.

바야르는 전복된 차로 향했다. 그 뒤를 천천히 따르던 지민이 운전석에서 처참하게 구겨져 죽어있는 운전수를 보더니 실소했다. 어쩌면 신따위는 뭐가 어찌됐건 신경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않게 사는 사람은 죽지 않았고, 한 없이 불행하던 소녀는 작은 상처도 없이 살았고, 여자아이를 탐하려던 운전수는 끔찍하게 죽어버렸다. 지민이 대충 힘 있게 어깨 상처에 묶은 천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었다. 실제로 마살루의 여자를 운반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저 눈들을 어떻게 따돌리고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바야르가 뒤집어진 차 안에서 여자아이를 꺼내오자 지민이 눈으로 그를 쫓았다.

"저 놈들이랑 같이 가야되는겁니까?"

그러지 말라고해도 그래야할걸요. 특히 이쪽은. 바야르가 놈들의 차에 여자아이를 태우고 저도 올라탔다. 지민이 동양인이라 의아한 듯 보던 놈들도 군말없이 지민에게 차에 올라타라 손짓했다. 두통이 몰려와 머리를 붙잡고 차에 기대어 출발하는 소리를 듣던 지민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차 때문에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신분 상승이라는 것이 이런걸 보고 하는 소린걸까 싶다가도 바야르의 얼굴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야할지 걱정된다. 바야르는 놈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며 최대한 마살루의 사람인 척 하는 듯 했다. 지민만 자리를 지키고 묵묵히 앉아 바야르가 하는 꼴을 지켜보기만 했다. 두통이 일었다.

괜찮냐고 묻는 바야르의 얼굴을 한 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지러워서 죽을 것 같네. 아무래도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 것 같았다. 천으로 묶어도 근본적으로 피가 멈추지 않아서 어느새 지민의 한쪽 팔이 붉게 물들어서 보기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조금만 참아요."
"괜찮습니다."

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마살루에게 향하려면 반나절 이상은 달려야한다고 했다. 피를 많이 흘려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는 지민에게 이상한 알약을 하나 던져준 남자는 손짓으로 삼키라는 제스쳐를 했다.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민이 한숨을 쉬며 약을 삼켰다. 마살루의 사람들이라는데 여기에서 약으로 죽일리는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지민이 약에 취해 잠들었다 다시 깨어나보니 흔들리는 차 안이 아니라 어느 방 안이었다. 거기다 제 팔이 깔끔하게 치료되어있었다. 이상하다는 듯 팔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으니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다가 일어서려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지민을 데리러 온 남자가 슬쩍 지민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부축해주려했다. 괜찮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니 남자는 해하지않으니까 어깨라도 잡으라고 영어로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이놈들은 영어라도 할 줄 아니 다행이라며 한숨을 쉰다. 여기가 마살루냐 물어봤더니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방금 전 친절은 어디로 갔는지 그 이후에는 단 한마디도 건내지 않았다.

"젠?"
"바야르..."

지민이 안내받은 곳은 가정집 처럼 잘 꾸며놓은 방 안이었다. 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분위기와 장식들이 지민의 고개를 저절로 돌아가게 했다. 바야르는 지민의 모습을 보자 앉은 소파에서 일어나 지민을 반기고 있었다. 어색하게 바야르쪽으로 간 지민이 그를 따라 자리에 앉으니 측면으로 가장 상석의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짖은 남색 정장을 입고 소파에 기대있던 남자가 지민을 보며 눈썹을 까딱였다. 그는 썬글라스를 쓰고 있어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꽤나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는 건 알겠으나 자신과 바야르는 그의 이름을 빌려 여기까지 왔으니 할 말은 없었다.

마살루의 이름을 대고 여기까지 왔다고?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여차하면 죽일 것 처럼 눈을 뜨고 있는 놈들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결정권은 오로지 소파의 남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민은 언제라도 방어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망설임없는 유려한 몸짓이 마치 제규어같다고 생각할 즈음 남자는 컵을 내려놓고 말을 꺼냈다. 우리 이름을 대고 살아남았다면 너희는 우리에게 빚을 진건가? 그가 묻자 바야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남자에게서 공격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나에게 뭘 줄건데?"
"..."
"적어도 그런 생각은 하고 했을 거 아냐?"

바야르는 대답이 없었다. 손도 못 쓰고 죽을 뻔 한 상황에서 그런걸 생각했을리가. 지민이 얼굴을 굳히며 눈을 감았다. 멍청하게 저 놈이 장난질 하는 걸 지켜만 볼 수가 없었다. 싸워서 도망치던가 대가를 지불하고 나오던가. 그의 말을 듣고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누군가가 지민의 어깨를 잡았다. 빌어먹을. 짜증을 못참고 남자의 팔을 꺾어 잡은 지민이 소파위의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미동 없이 지민이 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것 같았다. 차라리 싸워서 빠져나가는 게 성미에 맞겠다 싶어 남자의 손을 당겨 팔꿈치로 그를 내려치려 하자 방어만 하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 피하고 지민의 팔뚝을 으스러트릴 기세로 잡아왔다. 금방 꿰맨 곳이 터지는 느낌이 들며 숨을 들이마신 지민이 팔을 빼내 남자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제,젠. 제발 가만히 있어줘요. 바야르가 애원조로 빌자 그제서야 남자가 웃었다. 자존심 쎈 고양이를 보는 줄 알았어. 그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지민이 으르렁거렸다. 엿 먹어. 바야르의 낯빛이 새파래졌다.

"마살루에 어울리는 사람이 왔어. 안그래 카말?"

카말은 지민과 싸운 남자인 듯 했다. 남자는 말 없이 지민을 보기만 했다.

"내가 원하는게 생겼어."
"..."
"저 남자가 여기 남도록 해."










또 정리

석진 = 유스
지민 = 로이, 젠
태형 = 파이
정국 = 루크
윤기 = 사토, 사토우
호석 = 제이
남준 = 카림, 마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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