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feel homesick





"로이, 네가 한국사람이라고?"
"..."
"생각조차 하지 못했군. 동양인이라고해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만 생각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카림에 적응하지 못한 지민이 그를 이상한 사람 보듯 했다. 카림이 테이블에 기대어 소파에 앉은 지민을 응시하더니 많은 걸 생각하는 듯 한참 말이 없었다. 지민이 그의 선글라스를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한국인이라고 반가워하는 건 여기에 오고 나서 세 번째였다. 카림은 본격적으로 큰 보폭으로 다가와 지민의 앞에 앉았다. 그에 맞춰 카말이 차를 내어와 카림의 앞에 내려두었다. 한국에 흥미가 많아. 로이 넌 미국에서 태어난건가? 그의 물음에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 단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듯 굴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는 일들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민의 한국행은 지옥과도 같았다. 한국인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여행중 동시에 사고로 사망하면서 집안이 무너져서 쫓겨나듯 한국에 있는 집으로 귀국했다. 엄청난 금액의 사망금이 나왔다.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이 사라졌다. 그리고 회사를 본인이 이어야 한다며 울부짖는 병신같은 작은아버지와 보험금을 기부 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면서 자기에게 맡기라며 침을 튀기던 먼 친척, 그리고 그 친척의 자식인듯 저를 보고 음흉하게 웃고있던 얼간이 자식 한 명이 남았다. 지금은 전부 저세상에 갔는지 아직 부자인척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민의 앞에 나서 정신나간 소리하지 말라며 외치던 고모의 도움으로 집을 나와 부모님과 친분이 있는 선생님을 찾아가 뉴햄프셔에 정착했다.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도 꿈을 키우라고 했던 부모님의 말이 계속해서 생각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는 본인에게 쫓아와서 재산 숨긴 걸 내놓으라는 개소리 짓거리지 말라고 역겨운 눈을 부라리며 저를 보았던 그 놈의 정강이뼈를 야구배트로 두동강냈다. 저를 강간하려다가 다친 걸 뻔히 알면서 그 먼 친척년은 제 아들을 감싸들고 고소하겠다 난리를 쳤지만 강하게 보여야만 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지민은 칼을 등에 박히고도 널 물어뜯을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했다. 그 때는 뭘 믿고 그렇게 독기를 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합의금으로 크게 돈을 떼이고 나서 떨어져나가는 그 친척들을 두고 나와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청산했었다. 그건 아주아주 먼, 옛날이야기라서 딱히 궁금해 달려들지 않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석진도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경험담도 못들어보겠군."

지민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는 것 쯤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빈 잔을 손으로 문지르며 한참을 딴 곳만 바라보던 카림이 축제를 보러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부심벨 신전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얼마나 장관을 이루는지 찬양하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폼이 화제를 전환하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같아 보였다. 사람이 많은 곳은 더더욱 갈 수 없다며 학을 떼는 지민을 쳐다본 카림이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오랜만에 이쁜 여자들을 볼 수 있으니까. 밤새 어찌나 춤을 추던지.

"네 친구들도 함께 갔으면 좋겠어."
"...또 협박이군."
"아니지, 이건 부탁이야."
"..."
"사실 그곳에서 거래가 있거든."

지민이 그를 흘기자 카림이 카말에게 눈짓했다. 파이와 루크를 데리러나가는 카말의 뒷모습을 보던 지민이 한숨을 쉬었다. 선심쓰는 척 하며 제 맘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걸 누가 모를까. 지민이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마살루 정원에는 일원들이 전부 아부심벨축제라도 갈것처럼 분주했다. 고개를 돌리니 그에 맞춰 카말이 파이와 루크를 데려왔다. 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앉은 지민과 그 옆테이블에 기대어 서 있는 카림을 훑던 파이가 웃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에 로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있고 싶어서 그런것도 아닌데 왠지 카림과 같은 부류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적어도 김태형이라면 이해해줄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파이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을 줬다.

"로이가 이 남자가 맘에 들었나봐."
"그런 거 아니야."
"우리가 여유롭게 축제나 즐기고 있어야 할 때는 아니지 않나?"

카림. 이 남자는 자신들을 단번에 죽여버릴 수 있지만 어째선지 계속해서 살려두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주변에 온통 그의 부하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지민마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벌써 모래속에 처박혔을지도 모를 일이니 닥치고 있는 게 나았다. 카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갈 생각 안 해도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게 해 줄테니 걱정하지 마. 그가 웃는다. 괜히 빠져나가려고 했다간 전부 찢어지겠지. 몸도 마음도. 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카말에게 축제에 갈 준비를 끝내놓으라 전하고는 앉은 소파에서 일어난 그는 어딘가 신나보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도록 해. 움직이는 게 편해야 맘껏 즐길 수 있거든.

카림은 고작 아부심벨축제에 가면서 리무진을 대기시켰다. 이 편이 더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 동굴같은 리무진에 차례로 타며 무표정인 셋을 보던 카림이 입술을 삐죽이며 썬글라스를 바로했다. 축제인데 얼굴은 끌려가는 표정이야. 그의 중얼거림에 지민이 끌려가는거 맞다며 톡 쏘아붙였다. 태형과 루크가 말 없이 앉아있자 카림이 태형에게 물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예전에 날 만난 적 있나? 그의 물음에 태형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

"수작걸지마."
"아냐, 난 꽤 익숙한 얼굴인것 같아서."

태형이 이런 곳 까지와서 의뢰를 했을리가 없다. 러시아도 울며 겨자먹기로 다녀온 걸 아는 지민은 태형이 혹시 자기와 만나기 전 정보국 일에 가담하다 카림에게 얼굴이 노출된 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는 정보국에서 대외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작은 정보마저 놓칠 수 없는 상황이라 정보국이 혹시 자신들을 찾으려고 하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혹시 홍콩에서 레이콥라는 남자 만나지 않았나?"
"홍콩은 간 적 있지만...레이콥?"
"그래. 레이콥."
"...만났어."
"안타깝게도 그가 스파이짓을 하다가 힌바한테 공개처형 당했을거야. 그의 시체에서 당신이랑 비슷한 사진을 본 기억이 있어서."

결국 레이콥도 죽었군. 태형이 고개를 숙였다. 홍콩으로 레이콥과 팀원 몇명이 지원나갔다가 그곳에서 먼저 이탈해 도망친 남자였다. 파이를 좋아한다며 어떻게든 해보려던 사내는 태형과 함께 잠자리를 몇 번 했던 사이였다. 사랑하는 가족이야기를 쉬지 않고 하던 그였는데 이 사막에서 고작 스파이짓이나 하다가 공개처형당하다니, 태형은 혼란스러운 눈을 숨기려고 애썼다. 그의 탈출을 도와줬던 태형은 그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가족들 품에 돌아갔을거라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얻은 것이라곤 단 두가지. 첫 번째, 정보국을 이탈하면 죽을 때 까지 도망자 신세가 된다는 것. 두 번째, 도망에 성공하더라도 평범한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 새삼 자신이 잃을 게 없다는 사람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태형의 사진을 왜 지니고 다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장난처럼 짓거리고 다녔던 '좋아한다'의 연장선 인 것은 확실했다.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경험은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레이콥이 태형의 머릿속에서 씨익 웃었다. 파이. 좋아해, 너랑 키스하고싶어. 그것보다 더한 것도. 그의 느리고 나긋한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린다. 그로 인해서 태형도 삼촌 사이먼과 탈출할 계획을 확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렇게 타지에서 그의 마지막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로이와 루크 앞에서.

"이것도 인연이군. 안됐지만 말이야."
"나랑 상관없어."
"그래. 다행이야."

친한 친구처럼 걱정까지 다 해주는 카림이 무슨 의도인지 모를 웃음을 했다. 지민은 혹시라도 무슨 일을 꾸미고 있나 햇지만 그것까지는 아닌 것 같아 긴장을 그나마 놓았다. 태형은 계속해서 안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루크나 지민에게 통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물어볼 수 없었다. 정보국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지민은 태형을 추적할 당시 태형과 사이먼이 관련된 모든 임무들과 그들의 배경에 대해 훈련받았던 적은 있지만 디테일 한 것은 잘 모른다. 태형의 옆에앉은 루크는 더더욱 모른다는 표정으로 태형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거의 다 왔어."

벌써부터 춤판과 함께 개미떼처럼 모여든 사람들의 시커먼 머리통밖에 보이지 않아서 지민이 눈쌀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곳에서 잘도 하겠군.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쉽게 인파에 섞여들지 못했다. 카림이 축제에 간다고 몇몇 조직원들이 따라붙었지만 인파에는 금방 휩쓸려버릴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최대한 그와 붙어서 걸음을 옮기니 그나마 한적한 곳이 있었다. 신전근처에는 발도 못들이밀겠지만 그나마 석상이 조금 보이는 곳이었다. 춤추는 여인들과 관객들이 웃으면서 서로 어울려 놀았다. 섞여들지 못한 건 지민과 루크 그리고 태형 밖에 없는 듯 했다.

"마살루가 답답했을텐데. 축제가 처음인가?"
"북적이는 곳은 딱 질색이야."

언제 누구에게서 총알이 날아들어 심장을 관통할지 모르니 경계를 풀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지민은 답답함에 겉옷을 벗었다.

"아침해가 뜰 때까지 계속이라고?"
"걱정마 일이 끝나면 바로 되돌아갈테니까. 그때까지는 못 있어."
"..."
"모처럼 데려왔는데 무안하네."

카림이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듯 가지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멀리서 확인하고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왜 이런 거래를 하는걸까 의아한 지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와 정 반대의 장소에서 하는 거래. 지민이 남준에게 바짝붙어서서 그의 시선을 쫓았다. 부랑자같은 행색의 남자가 힐끔 카림을 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카림이 웃으며 가방을 닫았다.

"신전을 보고 싶으면 내가 특별히 테이블 위에 올라갈 수 있게 허락하지."
"놀리지마. 보고싶은마음 없어."
"그래?"
"어서 거래를 끝내길 바래."
"로이. 고개숙여."

그가 날아들어오는 총알을 가방으로 막고 자켓에서 소음기가 달린 총을 꺼내들었다. 흥겨운 사람들 틈에 서 있는 그는 꽤 이질적이었지만 지민과 파이, 루크를 등지고 그 아수라장 속에서 정확히 두 사람이 그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바닥에 흥건해진 피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움직이자 지민이 어떤 남자와 부딪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욕을 중얼거리며 지민을 노려보고는 그대로 달려간다. 동시에 태형의 뒤를 노리던 한 남자가 태형의 목을 끌어안고 칼을 꺼내들자 더 빠른 몸짓으로 급소를 찔러 남자를 무력화시킨 태형이 남자의 칼로 목을 단번에 그었다. 정보국 사람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태형이 지민에게 묻자 지민이 가만히 생각해보다 제 발치에 박히는 총알을 피해 건물 벽에 숨었다.

카림이 고용한 암살자라면 제 손으로 죽일 리가 없으니 다른 쪽으로 생각해야 했다. 카말과 루크가 남자들을 제압하며 그자리에서 숨통을 끊어놓았다. 난리통 속에서 놈들의 동태를 파악하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지민이 다가온 남자의 팔을 꺾었다. 그러자 상대도 지민의 어깨를 있는힘껏 밀며 떨어졌다. 한쪽 팔이 덜렁거리는 걸 보니 부러진 게 뻔했는데, 남자는 미동없이 지민에게 달려들었다. 남자의 팔 하나를 못쓰게하지 못했더라면 분명 그대로 제압당했을것처럼 남자는 손등으로 지민의 머리를 후려쳤다. 고개가 돌아간 지민이 그 반동으로 돌아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었다. 남자의 후려치는 힘이 어찌나 쎈지 눈앞이 돌며 비틀거리자 남자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지민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아직 낫지않은 상처가 터진건지 헉! 하며 자리에 내려앉은 지민이 머리채를 잡혀 바닥을 질질 끌려다녔다.

"네가 마살루의 연인이라고?"
"...빌어먹을!"
"같이 가자."
"엿먹어."

그의 영어에 지민이 며칠 전 보았던 뉴욕 오너가 생각났다. 지민을 마살루의 연인이라고 알고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는게, 카림이 몇 번 더 지민을 대동하고 거래를 나간 적이 있어 장담하지 못했다. 역시 속고 속이는 관계가 맞았군. 지민이 성한 팔 한쪽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 남자의 팔을 꺾었다. 이번에는 쉽게 당하지 않을건지 남자는 지민에게 쉽게 빠져나와 다시 그의 머리를 공격하려고 했다. 아마 정신을 잃게 해서 끌고가려는 속셈같은데 지민도 두 번은 허용하지 않을 것 처럼 잔뜩 긴장한 채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카림에게 총이나 한 자루 받아둘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림에게도 포로일 뿐인 자신에게 뭘 맡기리. 지민이 한숨을 쉬며 자세를 낮춰 남자의 발을 걸어넘어트리려고 했다. 남자가 그것을 넘어서서 다시 일어서는 지민의 팔을 후려치자 지민의 어깨가 피에 서서히 젖어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민이 총소리가 가깝게 들려서 안심했다. 일행에게 부러 공격을 하고 원래 목적인 자신을 데려가려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싸움이 꽤 오래 지속된다는 느낌을 받은 놈들의 차가 두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그 차 속에서 놈과 비슷한 체격의 남자들이 여럿 내렸다.

마살루의 연인이라고 오해받은 이상 지민은 제 몸을 지켜야 했다. 남자들의 얼굴이 잡혀가는 순간 죽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 같아서 뒷목이 서늘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남자들에게 이기지 못한다. 옆에 태형이라도 있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아무리 강도높은 훈련이었더라도 지민에게 장정 여럿은 무리였다. 지민이 항복한다는 듯 쳐들었던 팔을 내리자 남자 셋이 지민의 양쪽 팔을 잡고 등뒤에서 천으로 눈을 가렸다. 입에는 재갈이 들어오는 듯 입안가득 천이 들어와 발버둥쳤다.

"가만히 있어."
"..."

지민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못하겠는데. 지민이 자신의 옆에 팔을 잡고 있던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목뼈가 부러졌나 할 정도로 고개가 돌아간 지민이 헉헉거리며 고개를 바로했다. 역시 마살루의 연인이야. 배짱이 커. 남자중 하나가 중얼거리자 다른 남자들은 아무말이 없었다.






"로이!!!!"
"당장 그가 출국했는지 알아보고 힌바와 접촉이 있었는지도 알아내. 살아있는 놈들을 고문을 해서라도."
"네."

카림이 인상을 쓰며 바닥에 떨어져있는 핏방울들을 보다 거센 손으로 멱살을 잡는 파이 때문에 뒤로 두어걸음 물러섰다.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뭐야? 울분을 토하듯 묻자 카림이 고개를 저었다. 저택의 폭탄을 해체하는 동안 나와 함께 움직이길 바랬어. 그런데 내가 아니라 로이를 데려갈 줄은... 식사를 함께했던 오너가 힌바와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다. 항상 곁에 아무도 두지 않던 카림이 제 손으로 직접 약점을 만들어냈으니 세력이 마살루와 비슷한 힌바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리라고는 예상못했다. 항상 도움없이 모든걸 해결하려했던 지민의 태도에 그가 타깃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지민이 발버둥이 심했는지 그의 피인지 모를 것들이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그것을 보던 파이가 미쳐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카림에게 칼을 들이댔다.

"당장 로이 안찾아오면, 숨통을 끊어버릴거야."
"..."
"시발!"

분이 안풀리는지 파이가 카말의 바지춤에서 꺼내와 남자들을 찔렀던 칼을 바닥으로 던졌다. 마살루의 사람들이 찾아와 일대를 한창 정리하고 있는데 박지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럴 때 왜 빌어먹게도 옛날이 생각나는지, 태형이 주먹을 쥐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온 몸을 지배한 것 처럼 쿵쿵 전신을 뒤흔들었다. 1분 1초가 급한데 고작 이방인일 뿐인 자신이 끼어들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마살루의 사람들이 경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던 카말이 파이와 루크를 차로 안내했다. 행적을 찾으면 바로 찾으러간다는 그의 말에 혹시 지민이 어디에라도 숨어있진 않을까 계속 뒤돌아보던 파이가 한숨을 쉬며 차에 올라탔다.





저택에 도착한 카림은 직접 지하실에 있는 그들에게 향했다. 의자에 묶여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보이지만 카림은 자비같은 건 일절 없는 표정으로 제 가죽장갑을 점검하듯 손을 이리저리 훑다가 테이블에 있던 권총을 들어올렸다.

"마살루에 폭탄 설치까지 하다니. 용기는 높게 사주지."

탕! 거침없이 이마에 총알을 박아넣자 힘을 잃은 남자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앞으로 남은 사람은 4명. 둘은 어디한번 죽여보라는 표정이었고 둘은 겁에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카림이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하청 놈들과 함께하는 건 변함이 없군. 카림이 겁에 질린 표정의 둘을 카말에게 눈짓으로 끌고나가게했다. 어떻게 되는지 눈뜨고 뻔해서 그런지 놈들이 울부짖으며 살려달라 빌었다. 예전 같았으면 저런 놈들은 돈이면 뭐든 하는 속성자체가 나쁜 놈들은 아니기 때문에 마살루에 흡수시키는 쪽이 많았지만 카림은 이번 일에 대해서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살른과 같은 분위기의 지민이 잡혀갔다는 사실이 마살루의 심장인 카림을 직접 움직이게 만들었다. 너희들은 꿈이 내 손에서 죽거나 마살루를 무너트리는거라면서. 그럼 그렇게 해드려야지.

아아아아악!!!!! 카림이 날이 손바닥보다 더 큰 칼로 그의 손목을 내려치자 그의 옷에 피가 튀었다. 동맥이 끊어졌는지 꽤 많은 양의 피가 튄다. 꺽꺽거리며 통제이상의 고통을 못이긴 남자가 흰자를 드러내며 정신을 잃었다. 그것을 전부 지켜보던 다른 남자가 눈을 감고 차마 뜨질 못하자 카림이 어서 대답하라는듯 눈짓했다. 넌 운좋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 넌 나에게 뭘 줄거지? 그가 낮게 묻자 남자는 눈을 떠 손목이 잘려나간 동료를 보고 입을 열었다.

"ㅎ...히...ㄴ"
"찾았습니다. 힌바 하청놈들이 확실합니다. 본거지로 인원을 보냈으니 정확한 위치를 알수 있을겁니다."
"차 대기시켜놔."
"네."

카림이 환하게 웃었다. 어쩌지, 몇초 일찍 말했어도... 내 형제가 너무 유능해서 탈이야. 카림이 방아쇠를 당기자 세 번째일지도 모르는 시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















"큽..."

써. 입술에 발라놓은 약품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인상을 쓰며 눈을 뜬 지민이 어두운 조명덕분에 금방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방일 뿐인 공간에 혼자 누워있다 더군다나 사지가 강력한 무언가로 묶인 채다. 터진 상처는 서툰 솜씨로 누군가가 응급처치만 해놓은 상태였다. 지민이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죽은 듯 미동이 없자 그 한숨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지민에게 다가왔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마살루 그는 내 연인이 아니야. 그러자 남자가 한 번 웃었다. 그건 상관없어. 마살루와 아주 가까운 사람을 납치하는게 목적이었거든. 그의 말에 지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이 없군.

조직 일에 끼어든 상황에 여기에서 뭘 한들 마살루는 제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머리위로 큰 자루가 뒤집어 씌워지고 손이 포박되었다. 꼭 사형수같이 해놓은 차림에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나를 미끼로 그 큰 조직의 머리를 움직일 생각을 하다니, 웃기지 않아? 천에 가려진 채로 묻자 남자는 지민을 끌어당겨 일어서게 했다. 마살루는 제 부하들을 아주 끔찍히 여긴다더군. 그것도 처음보는 남자가 대번에 마살루의 옆에서 그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격은 충분하지. 지민은 친절한 설명에 웃음이 났다. 그는 날 흥미로운 존재라고밖에 여기질 않는데.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남자는 지민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고르지못한 길을 걷는 지민이 자꾸 휘청거렸다. 체격이 작은 탓에 남자의 팔에 거의 매달리듯 걸어가는게 못내 기분이 나쁜지 그의 팔을 홱, 뿌리치더니 제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죽으러가는 길이 당당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거야."
"난 죽지 않아. 아직 그럴 때가 아니거든."

적어도 카림에게 잘못을 따지고 흠씬 두들겨준 다음에 죽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지민이 깜깜한 길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자 여러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뭐지? 중얼거리면서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 둘이 지민의 양쪽 팔을 잡아 끌어 무릎을 꿇게 했다. 고개를 숙이자 뒷목으로 칼날이 닿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공개처형인것같았다. 태형의 동료가 당했다던 것과 같은 건가 싶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누군가가 외쳤다. 중간중간 마살루가 언급되는 것을 보니 지민이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끝까지 자신을 마살루의 연인으로 믿을 것 같이 굴었다. 고개를 움직이면 바로 목으로 칼이 들어올 것 같은 자세에 어깨가 비틀려 꽤 큰 고통이었다.

"마살루가 아시아인이라는게 사실인가?"
"몰라."
"더럽고 불결한 짓을 저지른 마살루는 너와 함께 반드시 죽을 것이다."

지민이 피식 웃었다. 더럽고 불결한 짓이라 하면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남자여서 그런 것 같았다.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남자가 기분이 나쁜 듯 지민을 발로 걷어찼다. 인형처럼 툭, 하고 넘어간 지민이 자루가 올라가 제 눈 앞이 환하게 보이자 눈을 크게 했다. 빼곡하게 들어찬 남자들이 일제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살루는 적어도 한눈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이었지만 힌바는 그것을 훨씬 넘어서고도 남을 사람들이었다.

이 많은 놈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왜 2인자인지 잘 모르겠네. 아마 마살루 그가 들었다면 발끈해서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지민은 남자들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녔다. 목에 칼이 두어 번 목숨을 위협할 때 쯤, 놈들은 저를 당장 죽일 만큼의 용기는 없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래를 하려고 자기를 데려온 것 처럼 보였다. 저들이 보기에도 꽤 좋은 미끼로 쓸 수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상 지민은 카림에게 메리트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방으로 다시 데려가."
"네."

천조각으로 온 시야가 막혀 청각에만 의지해야하는 지민이 다시 질질 끌려 되돌아갔다. 마살루도 힌바도 도통 저를 인형처럼 다루는 데에 도가 튼 인간들인게 분명했다. 생각과는 다르게 온전하게 다시 돌아온 지민이 머리위에 쓴 자루가 벗겨지자 온전하게 시야가 돌아와서 그런지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힌바의 부하를 돌아봤다. 원하는게 뭐지? 지민이 묻자 남자는 단순하게 명예라 답했다. 명예? 명예라...

"마살루를 없애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명예다."

그러니까 이것도 곧 세력싸움이라는 소리였다. 지민이 피식 웃고 침대에 누웠다. 누가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며 기겁을 할테지만 지민은 제가 여기서 뭘 하든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소속을 분명하게 하지. 난 조금 후면 여기에 없을 몸이고 카림이라는 남자한테는 신세를 진 게 있어서 잡혀 있는 것 뿐이야. 지민이 나른하게 말하자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미 힌바의 모든 사람이 지민을 그의 동료이자 연인으로 알고있는 상황에 혼란을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지민은 충분히 도망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아마 카림이 마살루를 키워 뉴욕에 본사를 지을만큼의 크기가 되자 이 일대를 다 소유하려들까 두려워서 그러는 걸지도. 이유가 어찌되었든 지민은 머릿속에 계속 그의 말이 떠올랐다.

- 여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인륜도 없고 자비도 없는 곳이란 걸 잊지마.

예상 외로 지민은 그의 말에 계속 의지했다. 카림이 이 나라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만큼 세상 모두가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도. 지민이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가 나가지 않고 계속 지민을 관찰하듯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 마치 카림과도 같았다. 이제 이 곳 사람들의 눈빛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그렇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어서 카림이 이 곳으로 와서 자길 데려가던가, 이들이 날 버리던가. 둘 중 하나겠지.

- 무자히드! 마살루가 쳐들어왔어.
"과연 네가 그냥 마살루에게 잡혀있는걸까?"

무자히드가 지민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칼을 빼들었다.















-















"트룰린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일단 저격위치만 잡고 대기해. 내가 가겠다."

팀원들이 또 저런다는 표정으로 몇몇이 저격총을 느슨하게 빼고 대기하는 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본 지민이 아직도 계속해서 대기하는 엘레나를 쳐다봤다. 도대체 매번 뭘 원하는데 그들을 죽이지 않습니까? 지민이 묻자 엘레나는 가죽 자켓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유 어쩌구를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사이먼의 마지막 부탁을 운운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아들이 아니라 망설이는 겁니까?"
"그런게 아니야."
"그런데 왜..."

지민이 말을 멈추고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봤다. 고작 가게에서 빵 몇개를 사가면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파이와 제이, 그리고 유스가 길거리 흔한 청년들처럼 하하 웃으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지민은 죄책감을 그 날 처음 느꼈다. 내가 널 찾는 건 당연한건데, 왜 난 너의 평화를 깨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가. 옆으로 보이는 엘레나의 얼굴도 아마 지민과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신감이 들었다가도 그를 생각하고 있노라곤 그를 놔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유스는 오래 전부터 날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내가 괜히 그를 잊지 못해 발악하고 있을까 두려웠다.

엘레나가 총을 빼들어 지민에게 건냈다. 파이 트룰린의 허벅지를 맞춰. 익히 보고 들어서 아는 얼굴이었지만 석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절망스러윘다. 지민이 총을 들어 장전했다. 파괴력이 그렇게 크진 않을 것이다. 곧이어 파이 트룰린이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허벅지를 쥐고 신음했다. 죽을 만큼 노력한 성과를 보이는 지민을 바라보던 엘레나가 무전으로 철수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뒤돌아섰다. 아마 너도 저들을 선망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둬. 그녀의 말에 지민이 웃었다. 건물의 아래에는 파이 트룰린의 허벅지를 지혈하며 건물로 숨는 석진의 다급한 얼굴이 보였다.

"이미 늦었어요."

그의 말에 엘레나가 뒤돌았다. 내가 이렇게 무능하게 있으니 아마 곧 다른 놈들이 우리의 뒤를 밟겠지. 그녀는 이미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다. 뭘 어떻게 하건 우리는 도망치는 순간 죽게 되어있어. 그녀는 마치 모든걸 잃은 사람처럼 굴었다.

"사이먼이 그러더군. 언제까지 거짓으로 살 순 없다고. 여러 신분을 가지고 착한지 나쁜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신마냥 죽였다 살렸다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반대로 사이먼이 자유를 찾는 현실감이 없는 남자였지. 그래도 그는 도망쳤어. 아마 죽기전까지 도망치겠지. 난 그래서 그를 죽일 수가 없어."
"..."
"내 친아들인 파이 트룰린도."
"당신 지금 뭐라고..."

친자식은 맞지만 사이먼 여동생 아들이지. 그녀는 불임이었고 나는 신분 탓에 아이를 양육하지 못했으니까. 아마 사이먼도 죽을 때 까지 파이에게 말하지 않겠지. 엄청난 사실을 말한 것 치고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지민은 언젠가 파이를 만나게 되면 자기도 죽을 때 까지 숨겨야 할 비밀이 생길 것 같아서 기억을 도려내고 싶었다. 사랑했던 남자와 친아들을 죽여야만 하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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