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가한 평일 오후는 자기들마다 마루에 앉아서 저 언덕 입구로 누가 올라오나 계속 쳐다보는 게 일과처럼 느껴진다. 호석도 그녀들과 함께 멍청하게 언덕만 내려다 본다. 요즘 상판떼기 멀쩡한 놈들이 할 일 없이 제이를 찾아온다며 비통해하는 년들이 생겼다. 분명 김석진이나 김남준을 보고 하는 말이겠지. 사실 호석도 그들이 반가운 건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문지방이 더 닳는다는 게 아니꼬워보였다는게 되니까 코웃음을 쳤다.

김태형은 그 길었던 섹스를 끝으로 며칠을 얼굴하나 비추지 않았다. 유일하게 비밀을 공유하게 된 인물 치고는 미적지근한 반응에 오히려 호석 쪽에서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그냥 자기한테는 관리하던 년들 중에 하나가 특이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즈음으로 치부하는 것일지도. 호석은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금 당장 발버둥쳐봤자 주변에 흙탕물만 튀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아무 일 없는 것 처럼 지내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미꾸라지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일전에 그녀들처럼 소리소문없이 팔자폈다는 유언비어나 남겨놓고 사라지겠지. 흙탕 물이 되기전에 가라앉은 맑은 물에서 맘껏 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결국 창촌에서 가장 우두머리격인 김태형도 그녀를 막을 힘이 없으니 호석은 차다못해 시려운 마루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흙투성이인 앞마당을 발로 쓸어본다.

내 모든 추억, 내 모든 것, 동생, 빨간 드레스년, 좋지않았던 학창시절.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던 곳을 떠나는게 싫은 사람이 여기, 떠나고 싶다못해 안달난 사람이 저기. 이런 단순한 단어들을 나열해 보다가 저 멀리서 정수리부터 보이는 남자를 봤다. 다갈색머리의 남자는 서서히 이마를 드러내더니 길쭉한 눈을 드러냈다. 누굴까, 호석은 한 번 크게 심호흡하더니 입술을 감춰물었다. 누구든 그쪽 집안 사람만 아니면 됐어. 어쩌면 나른한 평일 한가한 오후를 틈 타 좆질할 누군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어떤 용무로 오셨어요? 앞잡이년이 앞다퉈 남자에게로 향했다. 남자는 창촌을 흘겨보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태형이 대신 내가 관리하게 됐으니까 그렇게 알아.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다시 내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호석의 눈 한쪽이 올라갔다. 놀랍게도,

김태형이 사라졌다.

"모가지 잘렸나보네."
"...무슨 일인데?"
"제이, 너는 한동안 방 밖으로 안나오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김태형이 여기 한 가운데서 흠씬 두들겨맞고 끌려간거 몰라?"

그런거 모른다. 호석이 어벙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번에 김태형에게 흠씬 맞은 년이 아침 댓바람부터 실실거리고 있을 때 알아봤다. 방 밖으로 나간적은 없지만 김태형이 맞는 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는데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김태형이 저에게 질려 나가 떨어진 줄 알았더니 어디가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호석의 발치에 툭 하니 놓여져 있었다. 뭐든 다 들어줄 것 처럼 별채로 들어오라던 그녀가 저지른 일 일까. 그렇게 따지자면 그녀는 호석에게 그렇게 나올 입장은 아니었다.

"병원이라도 가봐라, 제이 너는 애가 방 밖에 일은 꼭 아무것도 모르더라. 귀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웃기고 있네."

그럴 필요를 못 느꼈을 뿐이지. 호석이 신발을 꿰어 신었다.

"어디가?"
"저년 실실 쳐웃고 있는 거 보기 싫어서."

호석의 말에 아직 멍이 다 사라지지 않은 얼굴을 한 년이 비쩍골은 면상을 들이대며 언성을 높였다. 호모새끼 주제에 김태형 첩 노릇이나 하다가 김태형 사라지니까 어디 네 세상이 끝나보이기라도 하나봐? 그녀의 말에 호석이 웃었다. 아니. 네년 조지다 말고 어디로 도망갔는지 잡아오려고. 호석의 말에 앞잡이년이 중재를 한다. 제이 입조심해. 그리고 사림이 너도!

"좆같은 년..."




14

두 번 다시 들어가고싶지 않은 저택오는 길을 다 외워버려서 딱히 김남준이나 김석진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웃겼다. 고작 두 세번 간 게 전부였는데. 하지만 호석은 저택을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앞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김태형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 따지려던 생각이 사라졌다. 정말 왜 여길 왔는지 자신도 몰라서 한참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정말 자기도 어떻게 되어버린걸까. 그녀가 가진 것들로 인해 자신까지도 미쳐버린 걸까. 온 몸의 기운이 전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제일 혐오스러웠다. 뭣들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지만 그렇다고 내칠 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호석의 뒤로 낮은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비킬 생각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다가 두어걸음 물러섰다. 차는 지나가지 않았다. 그제서야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운전석을 확인했다. 그를 확인하자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1000억 운운하며 뒷구멍을 내어줄것같이 굴었던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자기 집 앞에서 서성이는 걸 본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김남준은 한참이고 저를 응시했다. 마치 눈빛으로 모든 걸 하겠다는 듯 해서 오히려 호석 쪽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피했다. 분명 언젠가는 만날 사람인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지만 지금은 보고싶지 않았다. 김남준이 차에서 내려 호석에게 다가왔다.

"김석진이 불러낸건가?"
"..."
"박지민도 만났던데, 이제 아예 집으로 들어올 생각인거야?"

개소리하고 있다. 확실하게 거절하려 김태형과 찾아간 자리에 김남준이 없었으니 이런 말도 이해할 수 있지만 한껏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참을 수 없을만큼 짜증나서 호석은 부러 남준과 눈을 맞추지 않고 입을 닫았다. 고작 김태형을 어떻게 처리해버렸을까 두려워서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왔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하겠으니 김남준이 제풀에 지쳐서 자기를 지나쳐갔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를 않을게 뻔하지. 남준은 호석을 살살 긁으려고 일방적으로 대답을 원하지도 않고 제 할 말만 쏟아냈다. 자신의 새엄마에 대한 악감정이라도 푸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지러워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면 안달이나서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게 취미인건가, 아니면 이들의 생존 방식이 고작 이따위인건가. 아무튼 가까이 지내고싶지 않음은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1000억 따위는 평생 그들을 보고살지 않아도 된다면 그냥 다 줘 버릴거라고 생각은 하면서 입은 떨어지지 않는 아이러니함에 호석은 저절로 눈이 커졌다. 김남준의 말이 어지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정신이 혼미해졌다는 게 맞는 거였다.

"야. 너..."

썩은 나무판자마냥 스르륵 무너지는 호석을 받아든 남준이 그를 안아들었다. 쉽게 들려지는 몸을 데리고 뒷자석에 눕히고 급하게 차를 몬다. 쓰러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린 호석이 마치 웃는 사람같아 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쓰러지는 것도 좆같이 사람 신경쓰이게 하지. 남준이 입술을 물었다.

여자 옆에서 껌딱지마냥 들러붙어서 잔 심부름꾼 노릇하는 김석진이 요즘 흥미로워하는 게 생겼다고 했다. 조금도 욕심없다는 듯 하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자처해서 그녀의 아들을 만나러 갔는지 조금 아이러니했다. 박지민도 대동하고 갔다는게 부러 의심받지 않으려고 한 것 같은 게 보였지만, 눈치 빠른 박지민이 눈치를 채지 않을리가 없다는 건 차마 예상 못한건가 싶었다. 김석진이 조금 더 흥미를 가지고 정호석이 김석진에게 마음을 열기 전에 자신쪽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유한 인상을 가진 김석진이 실은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정호석은 죽어도 모를테니까.

"...뭐야."
"..."
"하..."

호석이 머리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이복동생 앞에서 쓰러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김남준은 호석의 보호자라도 된다는 듯 다리를 꼬고 앉아 호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꾸며진 방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택이아니라 병실이었다. 쓸데없이 혼자 시체처럼 잠들어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왜 가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가 뭔가를 원하고 있었을까.

"바쁜사람한테 미안하네. 그냥 저택으로 데려가지도 않고 무슨 병원이야."
"난 열쇠를 적한테 넘겨줄만큼 성격좋은 새끼가 아니라서. 김석진한테 전부 들었을텐데? 니가 열쇠라는 것 쯤은."
"그건 내가 알아도 티내고싶지 않아."

네 눈에는 나나 그여자나 같은 족속으로 볼 게 뻔하지. 남준이 반쯤감긴 눈으로 호석을 응시하자 호석이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뱀이 기어오르는 것 같이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는 듯 했다. 김남준은 모든 걸 찢어버릴 것 처럼 호석을 쳐다봤다. 니가 그여자 아들인 이상 나랑 연관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 이미 지독하게 물어 뜯거나 뜯기거나 하겠지.

"내가 선택하라고 했을텐데."
"..."
"싸울건지 포기할건지. 아마 넌 포기하기는 이미 멀리왔어. 넌 모든 사람을 만났잖아."

자신도 필요 이상은 만나기를 꺼려하는 박지민이 흥미를 가진 이상 그 많은 돈을 포기한다고해도 이미 그의 게임판에 올라와서 꼭두각시 노릇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딴따라주제에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게 수준급이었으니 항상 예외적인 사람인 듯 하다가도 중요할 때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박지민이었으니까. 이미 그녀는 박지민이 이렇게 큰 존재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굳이 그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잡아 스폰받을 수 있으면서도 계속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것도 그녀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녀가 가진 모든게 흥미로워서라는 것을 죽어서도 모를 테지.





15.


"김태형 어디있는지 알아요?"
"몰라."
"..."
"거슬리니까 좀 꺼져."

호석이 자신의 손등에 선명하게 박힌 주사바늘자국을 애써 다른손으로 감췄다. 김남준은 기어코 자신을 창촌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남준을 보는 다른 년들이 호석을 부럽다는 듯 야렸지만 그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며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급하게 옆방 년이 자기 먹으려고 놓았던 비빔밥을 얻어 먹고는 수금하러 온 새로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호석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귀찮다는 듯 바로 다음년에게 향했다. 이번 달 이자 내. 그는 무미건조하게 손을 내밀고 벌벌 떨리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눈빛은 전혀 악의도 구원도 없다는 듯 평온했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려니까 정말 김태형이 어디로갔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제이. 손님 왔어. 앞잡이년의 소리에 남자는 호석을 한 번 흘기다 다시 그 다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꼴에 손님은 좀 있냐는 그의 눈빛이 거슬렸지만 이내 신경쓰지 않았다. 호석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소리없이 일어나 방 안으로 향했다. 평일 저녁 즈음에 들어오는 손님은 드물었으나 딱히 상관쓰지 않았다. 방 한켠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으니 남자의 급한 발자국소리가 타닥타닥 들렸다. 누굴까. 성격이 아주 급한 놈일까? 아니면 자주 들렸던 단골일까.

"제이. 나 돈 많이 가져왔어. 어때, 이거면 된거 맞지?"
"...가져왔어요?"

가져오지 말고 영영 다른 곳으로 꺼져버리라고 시켰다. 근데 그걸 또 가져오다니. 호석은 남자가 우스워서 참지 못할 지경이었다. 옆방 년한테 잠시 눈돌려서 미안하다는둥, 제이 네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나와서 정신차렸다는 둥 별의 별 핑계를 대며 호석의 발치에 만원짜리와 수표 다발을 쏟아내었다. 이걸로 나랑 같이 가는거야, 평생 나랑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자. 응? 남자는 마치 호석밖에 없다는 듯 눈에 눈물까지 달며 애원했다.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 뒷구멍이 잊혀지지 않아서 착각하는 거겠지. 호석이 비웃었지만 그에게는 자기가 돌아와서 기쁘다는 표정처럼 보였다. 전부 합쳐서 1000만원은 될거라는 남자의 말에 호석이 눈을 찌푸렸다. 1000만원은 무슨 하루 몇만원이 없어서 저에게도 몇 번 외상한 게 있는데, 딱 보니 본인돈 같진 않고 어디에서 잔뜩 끌어다 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래놓고 어딜 가서 살자는건지 웃기지도 않았다.

"그럼 뭐할까요. 먼저 여기서 한판 할까요?"
"나가자. 내가 너 아예 산거야. 맞지?"
"..."
"이제 여기에서 나가는거야. 우리 둘이."

푸하하하하하! 언제 이렇게 통쾌하게 웃었을까싶을 정도로 눈물까지 보이며 참던 웃음을 토해내는 호석을 보는 남자의 표정이 미묘했다. 고작 1000만원으로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게 우스워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웃음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은 마치 뒷통수를 맞은 전형적인 바보가 따로없었다.

"...제이?"

그의 애절한 부름에 호석이 그에게 돈뭉치를 밀었다. 고작 천 만원으로 내가 여기 있었으면 벌써 없었지. 호석의 말에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린 남자가 부르르 떨었다.

"...속였어?"
"속이진 않았어요.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짜 가져올 줄은 몰랐거든."

그의 눈에서 살의가 불타올랐다. 금방이라도 호석의 목을 쥘듯 한 눈빛에도 호석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어쩜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하다니, 역시 누구든 사람에게 미치면 이렇게 멍청해진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가져왔는지 알아?! 이혼하고 전재산을 털어서 구한 건데! 남자가 호석에게 달려들었다. 호석의 목을 있는 힘껏 쥐고는 체중을 실어 위에서 짓눌렀다.

호석이 남자를 피할 힘이 없다는 것은 호석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하며 기도가 막히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목울대를 타고 넘겨지다 사레가 걸린 것 처럼 아담스애플을 짓누르는 남자의 손은 무자비했다. 성대가 타오를 것 같은 느낌이 전신에 퍼진다. 남자는 흰자를 가득 보이며 호석을 내려다봤다. 개같은년, 좆같은년...! 온갖 년을 중얼거리며 짓누르는 그의 손 때문에 컥컥거리며 손톱으로 그의 손등을 있는 힘껏 긁었다. 살고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호석을 휘감았다. 온 몸을 버둥거리며 그에게서 빠져나오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꺼져."
"개같은년!! 죽어!!!"
"꺼지라고."

남자의 등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호석이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움켜쥐자 남자가 순식간에 벽으로 날아가 구석에 처박혀서 소리를 질렀다. 개같은 년! 죽여버릴거야!! 그의 외침에도 호석은 벅찬 숨을 고르느라 안중에도 없었다. 손자국이 빨갛게 일어난 목을 감싸쥐고 컥컥거리며 온 몸을 떨었다. 남자는 몇 번 벌떡 일어나 호석에게로 달려들었지만 그때마다 그의 발에 걷어차여 찬 마루바닥을 굴렀다. 옆 방년을 포함해서 쭈루룩 방 안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의 눈빛이 호석의 정수리로 모여들었다. 앞잡이년은 그제서야 정신도 못차리는 호석을 부축해서 잔뜩 흥분한 남자에게서 멀리 떨어트렸다. 그래봤자 5평도 안되는 작은 단칸방 안에서 벽에 붙어서는 것 밖에 되질 않았다.

"...어디 믿을 곳이라도 있어?"
"제이 어디갔어!!!"
"왜 여기서 깝쳐, 응?"

정신이 나가 침을 질질 흘리며 제이를 찾는 남자는 아무것도 안 남은 사람처럼 손톱을 세워 바닥을 득득 긁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질린듯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너같은 새끼들 많이 봐서 알지, 고작 돈 몇푼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애들. 그는 눈을 내려깔며 바닥에 흩날린 돈다발을 발로 툭, 겉어찼다. 이런 코딱지만한걸로는 여기에서 택시도 못 타 병신새끼야. 그는 거품을 물듯 벌벌 떠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일 첫날부터 기분 잡치게 하지 말고 가 제발. 귀찮으니까."

남자는 꽤 불쌍해보였다. 자신이 아무리 덤벼들어도 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서서히 인식이 된 듯 했다. 남자는 완벽한 이방인처럼 이 곳과 전혀 다른 냄새를 풍기는 행색을 하고서는 봉투에 천천히 돈다발을 담기 시작했다. 남자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는 한참을 남자의 정수리만 쳐다보다 방에서 빠져나갔다. 그제서야 정신을 찾은 호석이 앞잡이년의 손에 이끌려 그를 뒤따랐다. 휘청이는 몸이 아무리 앞잡이년이 강단이 쎄다고 하더라도 사내 한명을 이끌 수 있을리가 없었다. 같이 휘청이며 그의 뒤를 따르자 그는 몇 발자국 걷더니 왜 따라오냔 눈빛으로 뒤를 돌았다.

제이좀 부탁해요. 여기 여자들밖에 없잖아요, 예? 앞잡이년의 말에 그가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라고. 마치 호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말투였다. 애초부터 호석과의 대화는 귀찮으니 꺼지라는 대화로 종식되었고 그에게는 호석은 일종의 수입원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인계를 받을 때 가장 안쪽에 있는 방 하나에 죽을 동 살동 지내는 사내새끼에게는 이자를 안걷어도 된다고 해서 좀 어떤 놈인지 궁금하긴 했다. 귀찮은 일이 하나 더 줄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예상은 한참이고 빗겨나갔다. 잔뜩 귀찮은 남자가 위태롭게 흐느적거리며 정말 죽을 동 살동 하니까 미쳐버리겠다.

"차에 태워놔."











모바일 스킨이 더 좋은가... 아니면 이대로가 더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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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ip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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