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리연애가 나에게 무슨 잘못을 하였는가. 내가 그냥 학원물 성애자라서 그런거지뭐. 아악 전에도 진지전력달리면서 사제지간 뭐 그런걸 했었는데 이번엔 다른 학원물을 연성하였습니다.

지민이는 전교1등은 아니지만 반 1등은 맞음. 영화에서는 전교1등으로 나왔는데 딱히 이 사실이 비중있는건 아니라 그냥 공부 잘 하는 애 정도의 이미지. 항상 시험이 끝나면 게시판에 100등까지의 명단이 붙곤 하는데 위에서 눈만조금내리면 보이는 박지민의 이름. 항상 반 1등인데 반장은 또 아님. 자기가 뭘 나서서 한다는 거 자체를 많이 안좋아하고 또 하기도 싫으니까. 지민이는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메달은 중학교때부터 매번 따왔는데 과학고로 안가고 그냥 일반계고등학교로 진학한 케이스였음. 하고싶은것도 없고 아직 그렇게 중요하다고 느끼지를 않아서.

지민이가 다른애들한테 기억되는 이미지랄까, 아 박지민 걔 표정없는애? 할 정도로 평소에 표정이 아예 없기로 유명함. 괜히 애들싸움에 휘말려서 지나가다 코를 맞아 쌍코피가 터졌을때도 피를 뚝뚝 흘리면서 인상한번 안찌푸리고 무표정으로 도와주겠다는 애들 다 무르고 혼자 양호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애였고 한번 전교1등을 해봤다가 전에 전교1등이 자기앞에서 생색내면서 무시하는 말에도 두눈 동그랗게 뜨고 듣다가

- 내가 운이 좋았어.

한마디만 남기고 지나갔었음. 아무리 웃긴 얘기를 해줘도 혼자 표정없이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지민이는 그나마 가장 친한 친구인 다른반 태형이랑 있을 때 조금 편한 표정으로 대화하곤 함. 그래도 남들이 봤을 땐 거의 변화가 없음. 태형이는 반대로 다른 애들한테 언제나 친절하고 활발하고 그런데 지민이랑 어렸을때부터 친구사이였으니까 지민이랑 매번 급식실도같이가고 체육대회때도 같이있음. 그런데 다른 반이다보니 대부분의 시간들은 지민이 혼자 다님. 애들이 모르고 어깨를 쎄게 치고 지나가서 미안해! 하고 뒤돌았다가 에 뭐야 박지민이네, 미안해- 하고 먼저 떠나가버리는데 지민이는 가만히 서 있다가 욱씬거리는 어깨를 살짝 붙잡고 다시 걸어감.

지민이는 무딘것도 아니었고 그냥 표현방법이 그런것 뿐임. 속으로 아파. 무서워. 병신. 여느 남학생들처럼 웃기도 하고 빡치기도 하고 난리나는데 그게 밖으로 표현되는게 어느순간부터 잘 되지를 않아서 좀 문제라고 생각하는 정도. 다른사람들은 자기 속을 모르겠다고 싫어하는데 그 편이 차라리 자기랑 깊게 연관되어있지 않아서 상처받지 않아도되니까 딱히 신경은 안씀. 일종의 자기보호본능이랄까. 그래도 지민이는 무의식적으로 심리상태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아직 어린 학생임. 아무리 의젓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가끔 실수도 하고 그러는건데 다른사람들은 관심없이 그냥 지나치는거.

사춘기 이전까지는 다른애들과 똑같이 울고 웃고 많이 했었는데  아빠 엄마는 대대로 무뚝뚝한 사람이었고 일때문에 항상 해외에 있거나 바쁘고 특히 지민이가 친구 일로 엄청 힘들어하다가 스트레스때문에 위경련 일어나서 막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그거 보고 부모님은 바쁜나머지 얼른 학교 안가고 뭐하냐고 배아프면 학교 끝나고 병원가라고 하는데 지민이는 그게 너무 충격인거라 한참을 힘들어하다 여전히 자기한테 무관심한 아빠 엄마한테 처음으로 아빠엄마가 나한테 해준게뭐가있냐고 나 아들 맞냐고 소리를 막 치고 화냈는데 그때 아빠가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소리지르냐고 지민이 뺨을 때린거. 엄마는 잠깐 놀라서 쳐다보다가 얼른 들어가서 자라. 한마디 툭 던져놓고 다시 잔업하러 방에 쓱 들어가버림. 그리고 그때부터 서서히 지민이는 표현이 사라지고 덩달아 말주변도 사라지고 집에 가기 싫어서 밤늦게 더 공부하고 학원도 자기가 알아봐서 여기 다닐거에요. 하면 부모님이 말없이 돈 쥐어주니까 그걸로 혼자 피씨방가거나 태형이네 집가서 시간보내거나 함. 태형이네 부모님은 대충 태형이한테 이야기 듣고 지민이 반겨주면서 오늘은 자고갈거냐고 묻고 거의 그냥 둘째나 다름없이 지내게 해줌. 그럴때마다 지민이는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90 도 인사하고.

어차피 야자도 안하는 지민이는 어떻게 시간 떼울까 고민하면서 매일 하교를 하는데 이번년도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젊은 나이에 입;ㅅㅣ도 바삭하고 경력도 화려하다고 소문이 자자했음. 조금 함정이 사립이었던 전 학교에서 나와서 지민이네 학교로 옮긴 이유가 그 학교에서 제자 한명이 선생님이 자기 고백 안받아줬다고 학교 옥상에서 자살시도하고 그랬던 일이 있어서 일이 커지기 전에 자기가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걸로 마무리 지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온거임.

지민이는 선생님이 새로 오던말던 자기랑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날 복도에서 처음 마주치겠지. 안녕? 하고 인사하는 선생님에게 그냥 고개만 숙였다가 빠르게 지나쳐가버린 지민이는 문학선생님이 일생겨서 한시간만 대신 수업해주러 들어온 걸 보고 그냥 또 마주쳤네 싶겠지. 다른 애들은 막 저선생님 왜이렇게 잘생겼냐고 난리나고 거기다 잘가르치니까 말 다했지. 근데 지민이는 그런건 잘 모르겠고 학생들질문에 유머스럽게 받아치면서 씨익 웃는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치니까 괜히 놀라서 문학책에 코박았으면 좋겠다. 속으로 내가 왜이러지. 하다가 재수없게 자길보고 실실 웃는 얼굴을 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책에 집중하는데 다리 덜덜 떨어라ㅋㅋ

그러다가 중간고사에서 지민이가 또 1등을 했고 게시판에서 굳은 표정으로 자기 등수 보던 지민이가 기쁘다는듯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걸 쳐다보던 선생님이 지민이 옆에서

- 와 너 전교 1등이었구나. 축하해.
- 감사합니다.
- 기쁘면 그렇게 주먹만 꽉 쥐고 있지 말고 소리도좀 치고 춤도 춰야 축하해줄맛나지.

이러고 다음에보자. 하면서 사라진 선생님.

내가 기뻐하고 있는 거 어떻게 알았지?

지민이는 괜히 멀리 사라지는 뒷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가서 다음 수업 준비부터함. 지민이는 이과였는데 선생님은 문과 문학선생님이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음. 가끔 이과 수업 땜빵하러 자주 찾아오는거지.

지민이는 문학이 싫음. 비/문!학은 그나마 칼럼이나 논문읽기가 취미라 익숙해서 정보 습득용으로 괜찮긴 한데 나머지는 집중도 안되고 애매한 표현들을 전부 문법적으로 어떻게 해설해야 이렇게 나오는지 이 해석이 맞긴 한건지. 수학이랑 과학은 원리 구조 이해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지민이한테 그냥 국어적 능력은 문제이해능럭 그 이상의 감정적인 것은 본인 자체가 왜 정답이 이건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본인 선에서 던짐. 그리고 문학시각에 가끔 자는데 지민이 성적이 워낙 높다보니 문학선생님은 지민이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조는건줄 알고 그냥 에이 뭐 괜히 건드렸다가 자기만 피곤해질까봐 놔둠. 그래서 평범한 남고생인 지민이는 그 시간을 노려서 자겠지ㅋㅋㅋ

- 그래서 문학점수가...
- 전 상관 없습니다.

방학 보충때 석진이가 이과반을 맡게 됐는데 다른건 거의 만점인데 한과목만 80점대를 돌고 있는 지민이를 따로 부름. 일단 문학이 싫은거니 아니면 열심히 하는데 안오르는거니? 물어봤는데 지민이가 아예 왜 정답이 이건지 이해를 못하겠다네. 하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실제 작가가 그 문제를 풀었더니 다틀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긴 하지만 지민이정도는 외워서라도 풀수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생각을 가지고있는 애는 처음이라 좀 멈칫하겠지. 그냥 죽어라 외우라고 하면 자기의 선생님인생에 뭔가 죄를 짓는 것 같고 그렇다고 성적을 올릴 수 있는데 그냥 넘어가자니 지민이한테 안좋은 일이고. 다음에 다시 부를테니 일단 가보라는 말에 지민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교실로 가버림. 지민이는 선생님이 말하는 중간에 덮여있는 교과서를 한번 슬쩍 본게 생각이 나서 교실에 앉아 선생님 이름을 한 번 불러봄.

- 김석진...

놀라서 입을 합, 닫아버렸긴 했지만 자기한테 너무 관심을 갖는 것 같아서 일단 밀어내고 싶음. 집에서도 못받는 관심을 갑자기 학교에서 받으니까 자기가 당황해서 그러는거라고 치부해버리겠지. 그런데 김석진은 수업시간마다 자려는 지민이한테 계속

- 왜 자. 일어나.
- 지금 중요한 부분. 이거 시험에 내라고 이과반 쌤들한테 부탁할건데 자면 안되는거지? 그치?

밤새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괴로워서 잠도 못잤는데 끊임없이 지민이를 깨우는 소리에 엄청 싫어하겠지. 도대체 나한테 왜이러는거지. 싶다가 서서히 또 눈이 감기면 또 다시 들리는 잠을깨우는 석진이의 목소리. 사실 지민이가 잘못한거긴한데 너무화나서 호흡이 거칠어진 지민이가 자기 허벅지 꽈악 쥐면서 화 참겠지. 남들이봐서는 티는 잘 안나지만 저 멀리까지 걸어갔던 석진이 눈에 교복바지를 찢어질듯하게 쥐는 지민이 손이 보이고 웃기게도 그 이후로 아무 말 안함. 지민이는 이제 포기했나 싶다가 아예 잠이 깨버려서 그냥 수업을 듣는데 남들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수업을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음. 근데 지민이는 그냥 사람 자체가 맘에 안드니까 그냥 기계적으로 받아적기만 하겠지. 이해가안되면 무조건 전부 받아적는 지민이 때문에 또 공책에 자기가 하는 농담까지도 전부 적는 걸 보고 석진이는 정말 특이한애라고 생각하고.

지민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루종일 아무 말도 안함. 심지어는 태형이한테까지도 말을 안하니까 태형이는 오늘 무슨 일 있어 지민아? 하고 물어보겠지. 그럼 지민이는 한참 뜸들이다가

- 문학.
- 응?
- 싫어.

얘가 과목이 싫다고 하는건 본적이 없으니까 이과반 보충수업으로 들어간 석진이를 떠올리고는 에? 그쌤 수업잘한다고 소문났잖아. 하면서 못믿어함.

- 수업에 대해서 얘기하는거 아니야. 그냥 그 사람이 싫어.

태형이는 이해를 못하겠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지민이는 더이상 언급은 하지 않음. 이렇게 자기기분을 그대로 표출하는 애가 아닐텐데? 하면서 혹시 석진쌤이 지민이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는건가 좀 의심스러움. 그래서 교무실로 찾아가서 막 지민이에 대해서 물어보기로함

- 쌤! 지민이 아세요?
- 어, 이과반. 알지.
- 쌤 지민이 어때요?
- 어? 얘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뭐 공부잘하고 조용한 애지. 문학시간에 좀 졸기는 하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데 지민이만 일방적으로 거의 극혐수준이잖아. 그래서 뭐 지민이만의 생각이 있겠지. 하는데 그날 자습시간에 지민이 이름이 방송에 불림. 하필이면 상담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몇 있는데 그중에 석진이도 있어서 상담 명목으로 지민이 부른건데 지민이는 그동안 한번도 자길 부르는 방송을 들은 적이 없어서 불려놓고도 인식 못하다가 옆자리 애가 야, 지민아 너 부르잖아. 빨리 가봐. 하는 소리에 놀라서(역시나 티는 나지않음)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가겠지. 마지막 자습시간이라 다른선생님들은 몇 안되니까 지민이는 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데 기다렸다는듯이 석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지민이를 향해 상담실로 가자고 데려감.

- 왜 부르셨어요?
- 이번에 집중반 새로 생기는거 알지? 그 담당이 나라서.
- 안한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단호박먹은 지민이 대답이 조금 가차없어서 얘가 날 싫어하는구나를 단박에 느낀 석진이가 좀 당황한듯 눈썹을 긁다가 어... 하고 좀 뜸을 들이고, 지민이는 무슨 소릴 할건가 좀 긴장함. 자기한테 관심주는 것 때문에 항상 석진이가 무슨 말 하려고 할때마다 자기도모르게 긴장하게되겠지.

- 항상 화가날때마다 그런 식으로 표현해?
- ...
- 손아프게 그러지마라.

지민이 손을 슬쩍 내려다보는데 놀란 지민이가 자기도모르게 교복바지를 또 꽉 쥐고 있었음. 이번에는 정말 놀라서 눈을 막 굴리고 있으니까 석진이가 너 정말 내가 싫구나. 하하. 하면서 웃는데 지민이는 딱잘라서 그런거 아니에요. 하고 속으로는 심장 쿵쾅거려서 미칠지경이겠지. 도대체 뭔데 날 이렇게 잘 알아. 지민이는 계속해서 자길 파고드는 석진이가 너무 싫었음.

- 가보겠습니다.
- 어, 그래 가봐.
- 안녕히계세요.

그리고 별탈없이 보충이 끝나고 지민이는 드디어 석진이를 더이상 안본다는 생각에 엄청 속으로 좋아함. 그리고 그 다음학년도 수험생이 되는 지민이의 담임선생님은.

- 안녕. 다들 나 알지. 김석진이고 마지막 1년 잘부탁한다. 이과도 문학 소홀이 하면 안된다. 알겠지?

미친 이럴수는 없는데. 지민이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다리를 덜덜 떨면서 석진이가 아침조회하고 나가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하루종일 쉬는시간마다 학년부장 선생님 주위를 막 맴돌고ㅋㅋ 학년부장이 지민이한테 지민아 혹시 할말있냐고. 그러면 지민이는 무표정으로 아뇨 없습니다. 하고 다시 돌아감. 그걸 먼곳에서 바라보는 석진이는 당연히 지민이가 왜저러는지 알겠지. 그리고 당연하게 지민이가 신경쓰이고. 자길 일방적으로 엄청 좋아하는 애들은 봤어도 저렇게 싫어하는 애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잘 모름. 자기가 괜히 지민이 비밀같은걸 말했나. 그냥 저렇게 표현하는걸 본인 스스로 참아누르는게 안쓰러웠을 뿐이지 싫어한다는 표현은 아니었으니까.

석진이는 괜히 지민이 불러서 심부름 시키거나 하는데 지민이는 그때마다 말 없이 그냥 함. 투정이라도 부릴줄 알았는데 또 일도 잘하니까 주로 찾겠지. 반장은 따로 있는데 지민이만 시킴. 그래서 다른애들은 둘을 보고 무슨 애증의 관계냐고 수근거리는데 지민이는 그냥 할 말도 없고 이렇게만 지내다가 졸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뿐임. 그리고 잠깐 학기초에 소풍같은 일정이 찾아오는데 원래 고사미들은 축제나 체육대회같은거 참여 안하게되어있으니까 학기초에소풍한번 다녀오고 계속 버닝타임임. 그래서 지민이는 소풍가서 다른 반인 태형이랑 붙어다니다가 반끼리 모여서 놀때면 혼자임. 어김없이 혼자 앉아서 책 읽고 있는데 석진이가 옆에 앉아서 지민이가 뭐 읽는지 살짝 곁눈질로 보는거임. 시선을 느낀 지민이가 쳐다보니까 석진이는 웃으면서 너 과학 진짜 좋아하나보다. 이러는데 지민이는 이런 모습 보였다는 게 괜히 부끄러워서 눈 굴리고 있는데 석진이 눈에는 죄다 무슨 생각하는지 보여서 참나, 책읽는 거 하나 들켰다고 그렇게 부끄러워하냐고 머리한번 쓱 쓰다듬음. 그리고서 애들한테 다 4시까지 집합이니까 놀으라고 해놓고 다시 지민이한테 옴

- 여기 계속 있을거지?
- 네.

지민이는 계속 하던거 함. 석진이도 아무말 없이 앉아 있는데 석진이 옆에 오래 있어본 적이 없어서 그동안 몰랐는데 옅은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음. 지민이는 문득 놀라서 석진이를 바라보는데 피곤하다는듯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한숨을 쉬는게 항상 밝은 표정으로 애들대하는거랑 사뭇 달라서 숨막힐것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석진이를 계속 쳐다봄. 석진이는 그제서야 지민이 시선을 느끼고 아, 미안 신경쓰였나? 하니까 지민이는 아뇨 괜찮아요. 하고 책에 코박고 열심히 보는 척 하는데 그 옅은 향수 냄새때문에 집중이 안돼서 한참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음.

석진이는 학생들한테 선을 긋는 행동이 친절하게 대해주는거였음. 남들은 기분 나쁨을 표현하지만 석진이는 그 반대랄까. 친절하게 대해주는거 거기까지만 다가왔으면 좋겠고 그 이상의 감정은 석진이한테는 도를 지나치는거기 때문에 오히려 친한 사람들한테는 편하고 자유롭게 대하고 화도 냄. 이상하게 지민이 앞에서는 되게 편해지니까 얘가 자기한테 다가오지 않을 걸 알고 그러는건지 자신도 잘 모르겠음. 한참 말이 없던 지민이가 책을 탁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을때 정확하게 4시였음. 석진이는 이제 하나둘 모이는 애들을 보고 이제 반별로 집합하는 장소로 가기로함. 다큰애들 인솔하기도 무안해 죽겠는데 소풍이라니. 석진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뭐. 하면서 애들 데리고 집합함. 지민이는 맨 뒤에 서서 조금 뒤쳐진채로 따라서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학교로 돌아가겠지. 계속해서 코끝에 맴도는향 때문에 편하지 못함.

그리고 얼마후에 석진이한테 지민이네 반 여학생이 고백하겠지. 그 전학교에서도 그런일이 일어나서 여기로 온거니까 석진이는 또 단칼처럼 거절함. 허울좋은 이야기를 해줘봤자 희망고문이라는 생각에 널 여자로 본적 없다는식으로 얘기하니까 여학생이 하루종일 운다는 소식을 반장을 통해서 듣음. 지민이는 난리를치면서 우는 여자애를 한심하다는듯 쳐다보는데 여자애는 왜 그따위로 쳐다보냐면서 지민이한테 욕함. 지민이는 괜히 불똥튀어서 나니 시발? 하고 쳐다보는데 딱히 표정변화 없는 지민이한테 표정없어서 재수없다고 욕함. 지민이는 어이가 없어서 듣고만 있는데 뭐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쳐도 자기한테 화풀이하는게 맘에 안들어서 그냥 무시함. 뒤에서는 고래고래 욕하는데 지민이는 무시.

- 한심하다 진짜...

석진이는 자기반 여자애가 고백해서 찼다는 소문이 죄다 나서 들어가는 반마다 이상하게 수근거리는 소리와 환호소리에 시달려서 얼굴은 웃고있어도 매우 기분이 안좋음. 잘 대해주는건 일종의 방어본능인데 그게 상대방한테는 뜻이 다르게 전달되니까 정말 자기 성격이 이상한건가 싶기도 하고 종례도 그냥 반장한테 청소하고 잘 가라고 전달하고 혼자 교무실에서 내일 수업이나 준비하고 있었음. 지민이는 석진이가 시킨 일 다 끝마쳐서 그거 가지고 왔는데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안하고 고민에 빠져있는거임.

- 선생님.
- ...
- 선생님.
- 어? 어...거기에 놓고가라.

이랬는데 지민이가 의아하게 쳐다보다 다시 돌아서 나가려고 했는데 석진이 옆에 높게 쌓여있는 상자들 건드려서 와르르 쏟아지는거임. 석진이도 놀라서 지민이 얼굴 위로 쏟아지는거 팔로 막고 애 끌어당기는데 지민이가 끌려와서 맹하게 눈만 뜨고 있으니까 갑자기 석진이가 조심좀 하지!!! 하면서 소리치는거. 아니 왜 다들 나한테 화풀이야? 지민이가 석진이가 붙잡은 손 확 쳐내고 인사하고 그대로 나가버림. 석진이가 멈칫하고 지민이 쫓아가려고 했는데 한숨 푹 쉬더니 그냥 엎어진 상자들 정리함. 안에 뾰족한 것들도 많이 있어서 도대체 이딴걸 여기 왜 세워놨냐고 혼자 씩씩거리면서 다른 곳에 다 정리해서 처박아둠.

지민이 어디갔냐고 물어보면 청소하는 애들이 이미 지민이는 가방챙겨서 집에 갔대지... 화풀이해서 미안하다 사과하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도 없어지고 오늘 하루 완전히 최악이겠지. 그래서 친구들 불러서 한잔 하려고 전화때리고.

- 그러니까 내가 애들한테 잘 대해주지 말랬지 새끼야.
- 난 선을 긋는다고 그런건데.
- 웃는 낯으로 그러는걸 누가 아냐?! 아직도 우리학교 전설로 남았다 너.

석진이가 전에 있던 학교 선생님인 남준이가 술자리에서 너 그렇게 사람 대하다가 언젠가 큰일난다고 그렇게 일러줘도 안들어먹더니 이번에도 거기가서 사고친다고 화냄. 석진이는 20여년간 이렇게 살아온걸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치냐고 한숨쉬고. 남준이는 괜히 그렇게 일벌려서 스트레스받았다고 같은 반 학생한테 화낸걸로도 정신 못차리냐고 그러겠지. 그래서 석진이는 마음 단단하게 먹음. 그래, 내가 그동안 오해받으면서 힘들어했으니까 이제 바뀌자.

지민이는 집에 돌아와서 방 불도 안켜졌는데 침대에 앉아 있었음. 거리가 가까워져서 향수냄새가 확 풍기니까 덜컹 심장이 내려앉았는데 또 반대로 석진이가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놀라서 뿌리치고 그대로 나와버린거임.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거 다 정리하고 와야되는데 화나고 억울해서 그럴 겨를이 없었던거겠지. 지민이는 자꾸 자기 감정선에 끼어드는 석진이가 신경쓰여서 너무 싫음. 부모님은 지민이 방에 인기척이 느껴지니까 원래 끝나고 학원가는줄 알았던 애가 집에 있어서 너 왜 여기있냐고 물어보면 지민이는 무표정으로 오늘 몸이 안좋아서 조퇴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역시 부모님은 아 그래, 하고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도 없이 그냥 나가버림. 지민이는 또 바지를 꽉 움켜쥐면서 닫힌 방문만 하염없이 쳐다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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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ip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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