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분명히 나는 꼭 하나는 해야된다고 했는데 그대로 까먹은 니 잘못이야."
"..."
"누가 죽기살기로 하래? 그냥 평소달리던대로 하기나 해."

태형은 괜히 할 말 없으면서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간다. 원래 아침자습같은건 낮잠시간이지만, 사람 한 번 제대로 귀찮게하는 준면의 뒷통수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참자. 저새끼도 시달렸겠지. 그 건너편에 앉아서 자습하는 정국의 얼굴도 한 번 본다. 어제는 우울하다 못해 울 것 같은 표정이던게 저 놈이 맞는지 자기혼자 눈치만 본 것 같아서 피곤했다. 뭐 어때 같은 지붕에서 살아도, 침대 1,2층을 나눠서 써도 저 놈 속은 모르겠다. 전정국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뭘 원하는지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어서 비위를 맞춰줄 여력도 없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건 생각도 안 했다. 저를 향한 전정국의 계속되는 무관심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쪽에서 거들떠도 안 본다는데 더 매달릴 만큼 친했던 것도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그만 둬 버렸다.

너 대신 달릴 사람 있으면 걔랑 바꿔줄게. 박지민 빼고. 고개를 휙 돌린 준면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다. 안그래도 박지민 그 개새끼 어디가서 사고 치고 돌아다니다가 수습이 안되서 뒷감당 하느라 학교도 못나오고 있는 게 뻔한데 연락이 안 되니까 오히려 태형쪽에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육성재와 한바탕 하기 전에 했던 그 지독하고 길었던 잠수기간처럼 박지민이 며칠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까 입 싹 닫고 정승처럼 공부하던 한상혁이 굳이 문과건물까지와서 박지민의 안부를 물어보는 걸 보아하니 육성재가 또 한상혁을 들쑤셨을 게 분명했다. 결국 자기도 잔뜩 걱정하고 있으면서 혹시 그 때 일이 다시 재연되지 않을까 미리 한바탕 욕을 해 줄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태형은 그때처럼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관심없는놈은 계속 관심이 없는 게 맞고, 지랄할 놈은 지랄하는게 맞다.

결론은 달리기도 작년처럼만 하면 된다. 나중에 원망하는 놈이 잘못이지.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니까 조금 마음이 편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대회시즌이 다가오니 전정국이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다. 자습하나 빠지는 법 없이 매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꼭 반애들은 괴물 전정국에 대해서 심심치않게 떠들어댔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게 된다. 얼굴 보는 시간이라곤 아침이나 늦은 밤이 전부라서 물어보는 것도 웃겼다. 괜히 물어봤다가 니가 뭔상관인데 소릴 들으면 좀 기분은 상할 것 같지만서도 이젠 서로가 오기로라도 없는사람 취급한다.

"김태형. 자냐?"
"아니."
"그럼 좀 일어나봐."

콩이다. 오랜만이네 콩. 콩이라하면 이홍빈의 별명이었다. 사내새끼주제에 애새끼도 아니고 콩먹고 토하는 새끼라고 박지민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놈은 속이 안좋아서 그랬다고 그렇게 항변을 하지만 토하는 걸 본 놈이 한 둘이 아니라고 떠벌리고 다녀서 조금 사이가 멀어졌던 놈이다. 여전히 박지민만 보면 이를 갈며 뒤에서 뻐큐를 날리는 놈이지만, 오늘은 표정이 안좋다. 태형은 이홍빈의 표정을 보고 단번에 지민의 일이라는 걸 알았다. 녀석이 평소에 복수심에 불타올라 박지민에 대한 얘기라면 눈에 불을켜고 찾는 놈이니까.

"여기에서 할 얘기는 못되고, 점심시간에 보자."
"...그래."

괜히 걱정하는 건가 조금 기분이 좋지가 않다. 딱히 박지민에게 지대한 관심을 주진 않지만서도 어딜 삐뚤어지게 나가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실 삐뚤어져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조차도 안해봤다. 그도그럴것이 삐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전정국마저 저렇게 범생이가 되어버렸으니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게 맞다. 사실 육성재와 박지민이 한바탕 했을때도 관심이 아예 없었던게 아니라 경험이 부족해서 난 아무 상관 없다는듯이 굴었다. 결국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서 현재 김태형에게 남아있는 사람은 박지민이다. 아무리 병신짓을 하고 다녀도 친구는 친구니까. 그 친구가 하필이면 박지민인게 문제인가? 이놈저놈이나 박지민이 사라진걸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사실 놈의 병신짓에 한 두번 관심두다 못가서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쁘겠지. 콩이 점심시간에 보자 했더니만 자기가 점심시간에 오질 않았다. 나쁜새끼. 혹시 몰라서 밥도 가장 먼저 먹고 나와서 기다렸는데 종이 치는 그 순간까지 털하나 비추질 않았다. 사람 애태우는 것도 가지가지 한다. 5교시가 시작하고 태형은 책상위에 머리를 처박았다. 수학이다.

이홍빈이 모습을 드러낸건 조금 지나서 7교시 쉬는시간이었다. 한대 칠까 생각했는데 또 질질 짤까봐서 내버려두고 놈이 하는 걸 지켜봤다. 태형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에 잔뜩 죄스러운 표정을 짓던 홍빈이 아무도 없는 옥상을 둘러봤다. 어짜피 잘 오지도 않은 곳을 왜 그렇게 경계를 하는지 이홍빈의 셔츠깃이 땀에 젖다 못해 절어있다.

"야, 뭔데 그렇게 뜸들여."
"박지민......혹시 게이냐?"
"......무슨 개소리야."
"내가 너한테 이거 말했다고 박지민이 알았다가는 나 콩쳐먹고 뒤져서 발견되니까 입단속 해."

이홍빈이 정신나간 소리를 짓거렸다. 지 입으로 콩얘기하는 건 처음이네. 그 말에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태형은 가만히 그가 하는 얘길 들었다. 아직 자기밖에 모르지만 남자랑 웃으면서 나란히 게이바를 며칠 들락거리는 걸 멀리서 봤다는 개소리였다. 미짜주제에 거길 어떻게 알고? 그건 니가 병신이라 몰랐던거지. 고등학생들은 거의 알고 있어 새끼야. 이홍빈이 밤에 몰래 그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데 처음은 잘못봤겠지 하다가 두 번째, 세 번째가 되자 거의 확신이 들었댄다. 그 이상한 소릴 듣고 태형은 말이 없었다. 설마 너는 알고 있었던거 아니냐고 묻는데, 알고 있었다고 대답할 뻔 했다. 사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이홍빈은 딱히 별다른 감흥 없이 이새끼 가만놔두다가 큰일 터질 것 같다고, 어떡하냐고 묻기만 했다. 그 날 육성재처럼 난리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실 엄청 친했던 터라 이홍빈에게 일절 박지민에 대한 이상한 얘기는 꺼내질 않았지만, 확실히 이홍빈은 달랐다. 생각했던 것 보다 개념은 있는 녀석이다. 태형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온국민한테 자기 게이라고 홍보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미짜가 술집에 있었다고 학교징계 먹으려고 작정했나보다. 이제까지 안밝혀진게 다행이었다. 태형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혹시라도 자기가 지민에게 냉랭해서 오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대고 있는건 아닐까 하고 이상한 상상까지 했다. 정말 저 놈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서 관찰하고 싶다. 전에는 안왔던 사춘기가 지금 와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내심 그동안 서로 다니기만 했지 고민같은 건 일절 관여하지 않아서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너...일단 입다물고 있어. 알아볼테니까."
"나야 그새끼가 무슨짓을 하고다니든 신경 안쓰는데, 거기 소문 안좋아.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니가 좀 잘 챙겨줘라."

매일 박지민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싸우면서 정든다고 얼굴에 걱정 한가득이었다. 고맙다. 짧은 말과 함께 태형은 피가 마르는 느낌이 처음 들었다. 관여하기 싫어진다. 남의 일에 관여해봤자 본인만 손해라고 그렇게 뼈저리게 느꼈으면서도 왜 매번 관여해서 혼자 상처받고 후회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박지민."
"야 오늘 급식뭐냐?"
"야."
"지각할 뻔."

아침댓바람부터 전력질주로 교문을 통과한 지민이 숨을 고르며 태형을 올려다봤다.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지민의 눈이 조금 커지다 다시 병신같이 웃는다. 없는데? 급식 뭐냐고 태형아. 분명히 김태형이 한번도 한 적 없던 말을 짓거렸으니 조금 당황했는지 자리에 앉는 모습이 어색하다. 자연스럽게 공부에서 열외된 박지민은 분명 수업일수가 모자라면 졸업을 못한다는 말에 꾸역꾸역 등교했을지도 모른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일부러 자기가 설렁설렁 넘어가길 바란다는 눈치였다. 또 골치가 아파진다. 그 동안 잠수타던 박지민은 그럼 박지민이 아니냐? 또 제반에 책상을 가져다놓은 놈은 분명 1교시 쉬는시간에 진짜 담임에게 끌려나갈거다. 그렇다면 오늘은 말 할 기회가 없다. 박지민은 분명히 그 이후로 이상한 기운을 띄는 김태형의 얼굴을 한동안 안보던가 아니면 또 잠수를 탈지 모른다. 예전까지만해도 박지민이 이렇게 자기 속을 숨기진 않았다. 태형 아니라 성재나 상혁에게 줄곧 뭐가 안된다, 누가 어쨌다 쫑알쫑알 일러바치듯 했으니까. 그 때에 비하면 현재의 지민은 아예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둘의 사이를 다른 사람들이 힐끗힐끗 보기 시작하고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둘을 중심으로 침묵으로 가득 찼다. 시발 존나 주목받기 싫다. 남이 뭘하든 무슨 상관인건지 다들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들을 못이겨낸 태형이 박지민 손을 잡아끌었다. 야, 나와. 딱히 할 말도 없고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는 뜻이었는데 주먹다짐이라도 예상했는지 다들 수근수근댄다. 존나 같이 못놀아서 안달이었던 두 새끼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지 화잿거리로 만들어먹으려고 지랄들이다.

"본론만 할게. 이홍빈이 펀의점 알바하는데 그 근처가."
"......."
"게이바라더라. 박지민."
"그래서."
"잠수타는 동안 뭐하면서 지냈냐? 자체휴일을 만들어서."

지금 제 앞의 지민의 표정이 어디선가 많이 본 표정이다. 분명 정학을 먹었을 때, 나머지 셋에게 지었던 그 표정임이 틀림 없었다. 그래, 니가 뭔상관이길래 아침부터 기분 좆같게 이딴 질문이나 하냐는 표정인데. 제발 그거 알면 남일 참견하기 존나 싫어하는 내가 신경좀 안쓰게 해. 말같아서는 이딴식으로 떠들고 싶은데 박지민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으쓱했다.

"글쎄."
"......"
"다 알면서 왜 묻는건지 모르겠다."
"야."
"가끔 이지랄하는거 나도 못해먹겠는데, 넌 오죽하냐. 존나 미안하게 됐다."

시발새끼, 어부 농사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열이 오른 태형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이 이상 관여하면 다신 안 볼 것처럼 굴면서 왜 존나 신경쓰이게 만드는건데. 육성재도 육성재 나름대로 존나 병신이라 박지민 같은새끼가 게이라는소리 단 한방에 쌩깔정도로 생각짧은 새끼인건 알겠는데, 박지민은 그보다 더 경우없는 새끼라서 도저히 눈뜨고는 못봐주겠다. 그래 너 게이라서, 게이니까 주기적으로 남자새끼랑 좆질안하면 얼굴에 두드러기라도 나냐?

"그럴지도 모르지."

너무 답답하다. 한대 치고 싶어서 주먹이 쥐어지는 게 보여도 상관은 없는데 이 놈의 눈물은 왜 병신처럼 나오려고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태형은 더이상 말도 섞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냥 내버려두고 쿨하게 갈 줄 알았는데 박지민은 계속 김태형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저새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까 궁금하다. 1교시 전 쉬는시간 종이 친다. 담임이 자습에 어딜 다녀왔냐고 따질게 분명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사실 이 관계를 개선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건 잠깐이었지만. 다 줄것처럼, 나는 너밖에 없다는 듯 굴었던 박지민이 돌아서면 다른사람처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되려 그 생각을 눌렀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박지민이 자길 버려놓고 가도 이 껍데기뿐인 사이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도 없고 김태형이 학교생활에 애착이 생길 일도 이제 없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놀지 못하는 좁은 시야를 가진 태형은 이런 관계가 너무 싫어도 벗어 날 수 없었다.

"......뭐야."
"눈물 닦으라고."

갑자기 지민이 사라진 쪽으로 나타나 아침에 깨우듯이 얼굴에 제가 늘 운동끝나고 쓰려던 수건을 던진 전정국이 묵묵하게 태형이 얼굴을 추스리는 걸 지켜봤다. 무슨 생각으로 이걸 집어들고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고싶었다. 잔뜩 쪽팔리다는 표정을 하고 수건에 눈을 슥 닦아버린 태형은 수건을 집어던졌다. 마찬가지로 전정국의 머리 위로 낙하한다. 학교에서는 투명인간 취급하더니 질질짜니까 수건쪼가리 던져주는 이 새끼도 도통 속을 모르겠다. 사람 기분복잡하게 이리저리 꼬인 성격의 새끼들 사이에서 지금 뭐하는건가 싶다.

눈을 굴리다가 문득 전정국의 바지춤을 보았다. 놈의 바지에는 스마트폰 대신 작은 수첩하나가 있었다. 저거로 단어라도 외우나보다. 독한 새끼. 괜히 태형이 정국을 욕해도 단 한마디 하질 않고 어디 외국에서 건너온 클래식 음악이라도 듣는 표정이었다. 다른 새끼가 올라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수건을 받았으면 내려가야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정국은 자기가 먼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오로지 태형을 담고 있는 게 상대방에게도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전정국은 움직임 하나 없었다.










안고 싶다. 김태형을. 혼자 도태되어 방황하는 김태형을 차라리 내가 가서 안아주고 싶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물들이고 또 그걸 괴로워한다. 그게 반복되면 어느새 자기가 이런 생각을 되풀이한다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민한답시고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김태형의 척추 뼈가 도드라진 뒷모습을 보며 그 생각을 씹어삼켰다. 그와의 연결고리는 오히려 자신에게는 족쇄가 되어 목을 조여왔다. 쿨한 척은 다 하면서 결국에는 해결하지 못하고 혼자 괴로워하다가 그냥 툭 던져놓고 나몰라라 해 버릴 줄 알았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그냥 넋놓고 바라보게 되어버려서 그게 더 힘들었다. 확실히 태형이 뭔가 바뀐게 분명하다.

"야."
"......왜."
"아 씨, 넌 사람 놀라게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냐."

갑자기 뒤를 휙 돌아선 태형 때문에 화들짝 놀란 정국이 들고 있던 단어장을 떨어트렸다. 집 안에서 처음으로 다른 화잿거리로 대화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말을 걸어놓고도 조금 머뭇거리던 태형이 정국에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너, 만약에 내가 남자가 취향이라고 하면 어쩔거냐? 그 말에 정국이 굳어 태형을 바라보기만 하는 줄도 모르고 태형은 이건 너무 뜬금없나 싶어 애써 무마하려고 별 욕을 늘어놓으며 됐다고, 신경쓰지말라고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진짜 미쳤나, 이딴 걸 왜 저새끼한테 물어봐 재수없게. 언제 친구였던 적도 없는데 괜히 사람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괜히 화가 났다.

상관 없어. 전정국의 한 마디가 들렸다. 대답해 줄 것같지 않아보였는데 용케도 그걸 또 대답해준다. 그러나 대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썩 이해하지는 못한 표정을 하던 김태형은 그냥 생각하는 걸 포기할까 싶어서 생각을 접어버렸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봤자 근본적으로 박지민이 하는 이상행동들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는 선택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선택지는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게이인거 들켰다고 기가 죽거나 사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다고 느낀 건 박지민이 앞으로도 전무후무할거다. 머리에 쥐나기 전에 빨리 자야겠다 싶어서 침대에 누운 태형이 눈을 감았다. 내일은 김준면에게 죽어도 이어달리기는 안된다고 말을 해줘야겠다. 도저히는 못해 먹겠네.

"야."
"왜. 나 그런취향 아니라고 했다."
"이어달리기......"
"안할거야 진짜. 억지로 끼워넣기만 해봐."

확 다른새끼 바통 뺏어서 역주행 할테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태형의 대답에 피식 웃은 정국이 침대 위에 올라가는듯 침대가 조금 흔들렸다. 1층 2층을 쓰면서도 단 한번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던 사이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내일은 또 다시 그를 본 적 없는 것 처럼 숨어버릴테지만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지 김태형은 자다가 뒷통수를 후려맞아도 모를거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는게 반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들어와보니 방에는 이층침대가 대뜸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형이 오랫동안 썼던 침대를 버리고 구하기도 힘든 거대한 이층침대를 들여놓은 아주머니는 날벼락을 맞았다는 표정의 태형과 함께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 흠칫 놀란 정국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어떠냐 물었다. 당연히 김태형은 무슨 집이 기숙사도 아니고 이층침대가 뭐냐며 당장 환불하라고 징징거리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둘이 좀 친해져보라는 말을 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는 바램일 뿐이지만 이젠 군말 없이 서로의 자리에서 잘 지내는 걸 보면, 확실히 둘의 공간에 익숙해졌다는 뜻일거다. 그렇게 사람 머리에 들어와 온통 헤짚고 돌아다니다 실증이 나면 무심하게 휙 빠져버리는, 아직도 어린애같은 모습을 버리지 못해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릴 밥먹듯이 듣는 김태형은 오늘도 쭉 전정국 머리속에 산다.

"1등으로 들어오면."
"..."
"소원 들어줘."

예를 들면 하루 내내 있었던 일은 그 다음날 까맣게 잊는다던가, 그런거. 생각하면 유치해서 눈앞에 가까운 천장을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만약,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너한테 못했던 말들 전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해서 이제 더 이상 미련없이 다음 날이 되면 전부 씻어내릴 수 없게,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나 잠이 들었는지 끝까지 1층에서는 대답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학교다니기존나힘들다시발 어어어ㅜㅜ 왜 네이버 메모에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면 줄 띄어쓴거 왜 다 리셋되냐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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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ip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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