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은 절망만 가득하다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이미 돌이켜보면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절망은 나에게 없는 것 까지 모조리 가져간다. 호석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앞으로도 쭉 비어있을 가슴만 툭툭 내리쳤다.

동생의 죽음은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사그라들 때 그 다 꺼져가는 생명 하나 연명해보려고 현실에 허덕이는 형은 그 시간에도 남에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겠지. 그 더러운 돈으로 살아남기 싫다고 울부짖더니 결국에는 너도 나를 끝까지 원망만 하다가 죽어버렸구나. 허망하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자신을 동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기 보다 선택지가 그것 뿐이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지만 호석은 그것을 굳이 들춰내려 하지 않았다. 창촌에서 자라나 그 순리대로 따라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라고 머리 빈 년이 깡통을 발로 차며 울분을 토해도 동생은 돌아오지도 않았고 호석을 원망했던 그 날 그대로 시간이 멈춰서서 그를 비웃었다. 그래도 돈좀 더 벌어보겠다고 2,3차를 더 뛰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ATM기 앞에 다가설 때면 조금의 쾌감은 있었다. 좆 앞에서 사그라들던 오르가즘도 그 순간이면 꽃잎이 만개하듯 머리끝이 괜히 간지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쾌감도 사치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다 못해 사무쳐서 호석은 자꾸 제 가슴만 툭툭 쳤다.

저 년은 끝까지 다리벌린 돈으로 동생 장례식까지 치뤄주네.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이는 년이 굳이 호석의 앞에 와서 궁시렁거렸다. 호석도 안다. 그러나 그런 돈 밖에 없는 걸. 그리고 저 년의 대가리가 빈 것도 안다. 그리고 호석은 그녀의 좆같은 빨간 원피스를 봤다. 여자는 수많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화를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말 없이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오늘 얼마나 벌 건가 가늠해보는걸까? 아니면 꼴에 불쌍하다고 온 장례식 갈 시간에 벌었을 돈 생각하니 아쉬운걸까?

"너도 이제 일 그만하겠네."
"..."
"작별인사는 하고 가."

빨간 원피스는 꽤 흥미로운 말을 짓거렸다. 지금 와서 평범한 삶을 바라며 살기에는 좀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는 금방이라도 털고 일어날 기세로 호석에게 새로운 삶을 제안했다. 모든 일을 '남의 좆 받아주는 것 보다야 낫겠지' 하며 제가 뭐라도 된다는 듯 했던 년은 순간 호석을 부럽다는 듯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다. 호석은 그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허공만 줄창 쳐다봤다. 이제 다시 창촌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겠지. 여자는 다시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어나갔다. 호석은 여자와 친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여자는 항상 호석의 유일한 핏줄인양 굴었다. 그 이후로 그 년이 따로 연락한 건지 비슷한 년들이 차례로 호석에게 찾아왔다. 대꾸할 힘도 없이 하는 말을 그냥 듣고 이거라도 먹으라며 바리바리 싸온 죽 뚜껑을 열었다. 속이 허한 게 마음인건지 위인건지 알 수도 없어서 그냥 하염없이 퍼넣었다. 안먹으면 죽어버릴것 처럼.





2.


제이, 난 니가 여기서 해방시켜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내 손만 잡으면 평생 걱정없이 살게 해 줄 수 있어. 그렇게 말 하던 새끼가 이번에는 내 옆방년한테 좆질을 하고 있으니 호석은 그냥 웃음만 나왔다. 며칠을 말 없이 자리를 비웠더니 세상은 더욱 절망같아졌음을 앉은 자리 언저리까지 온 그림자가 대변했다. 옆방 년한테 제이라고 하면서 씹질 하는 건 아니잖아. 호석이 쓰게 웃으며 벽을 쾅! 발로 찼다. 다 무너질것같은 콘크리트벽인지 나무벽인지 모를 건물이 잔 먼지를 일으키며 흔들렸다. 미련은 없었다. 그냥 제 이름이 좆질할 때 불리는게 기분이 나쁠 뿐이지.

호석은 낮과 밤이 바뀐 이 창촌으로 다시 돌아왔다. 온 사방의 하얀 병원보다야 곰팡이 냄새쩌든 벽지에서 눌러붙어 혼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이 곳이 더 편했다. 이 곳에서 나고 자라고 다시 이 곳에서 일 할때까지의 짧은 20여년의 시간동안 달라지는 게 하나 없이 시간이 멈춰버린 곳. 호석은 대자로 누워 흩어진 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안 하고 제 들숨 날숨을 의식하며 눈을 감았다. 죽는다고 죽어지지도 않을 생이 그렇다고 살아지지도 않는 좆같은 것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들이 호석에게는 날카로운 가시쩌럼 찔러오는 존재가 되었다.

"제이, 오늘 손님 받을텨?"
"응."

며칠 쉰 년이 소문타더니 인기 많아졌다며 앞잡이년이 셈을 냈다. 그렇게 부러우면 사내새끼로 태어나던가. 호석이 그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어떤 말로 키스를 피해볼까. 항상 주둥이가 침으로 범벅되는게 좆같아서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피하던게 이제는 좀 습관이 되서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한 100번째쯤 되서야 자각했다. 고민하고 있는데, 작은 방 문 위에 달린 발을 한 손으로 치며 들어선 남자는 호석을 발견하자 정장마이를 벗었다. 옷 이리 주세요. 하고 옷걸이를 손에 들었더니 남자는 마이를 건네줄 생각도 안하고 바닥에 앉았다. 급한 새끼. 호석이 바닥에 꿇어앉아 남자의 바지 앞섶을 짚었다.

"사모님께서 오시길 바라십니다."
"사모님?"

호스트짓은 한 적 없어. 호석이 웃으며 떨어져 앉았다. 인생에서 사모님이란 사람이랑 눈한번 마주쳐본 적이 없는데 남자는 당연한듯 호석에게 사모님이 저를 원한다고 했다. 원정까지 가서 호스트짓 할 생각은 없지만 제 앞의 남자가 취향이긴 했다. 벌어진 어깨에 맞는 수트를 벗기고 그의 것을 품어보고 싶긴 한데 좀 버거울 생각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도통 불편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 널 원해서 온 게 아니란 늬앙스가 다분해 보여 오기가 났다. 호석이 그의 허리띠에 손을 가져가자 남자의 눈썹이 잘게 떨렸다. 나랑 한 번 해주면 이름모를 그 사모님한테 한 번 가줄 수는 있어. 호석의 말에 남자는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는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것 같은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봐야 만족할 사람처럼 호석은 그를 원했다. 그래 기꺼이 키스도 해 줄게.

썩은 밧줄이든 아니든 어짜피 떨어져서 뒤질 걸 알고 있으니 호석은 거리낌없었다. 튼튼한 밧줄인양 저를 잔뜩 포장해서 들어온 놈도 너 밖에 없다는 것 처럼 굴었으니 나중에는 제가 진짜 뭐라도 된다는 것 처럼 비싼걸 주렁주렁 호석의 손에 들려주었다. 나중에는 허덕이는 걸 보고 제 풀에 지쳐 사라지는 놈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그 쾌감은 여느 섹스보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애초부터 정상적인 사고는 글러먹었으니 호석은 남자를 향해 아낌없이 욕정을 쏟아냈다. 죽으러가는 사람처럼 그의 것을 소중하게 품은 엉덩이가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 하다 원을 그렸다. 정장을 입은 채 그대로 그것만 꺼내서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듯한 그의 얼굴이 가학성을 불러일으켰다. 꽉 들어차는 사이즈가 호석을 미치게했다.

"무슨, 생각, 해?"
"..."
"싱,겁긴."

동생이 죽고 처음하는 타인과의 접촉이 서러웠다. 동생은 저를 더러운 사람 취급하면서 그 흔한 터치도 하지 못하게 했으니 섹스를 통하지 않고 누군가와 정상적으로 터치가 있을 리가 없었다. 금붕어처럼 며칠만 있으면 또 잊고 섹스에 흠뻑 젖어살거면서 호석의 뒷통수를 타고 올라오는 서러움은 매번 막을 수가 없었다. 좋아서 나오는 눈물인지 정말 서러워서 나오는 눈물인지 인지도 못하고 뜨겁게 들어왔다 사라지는 물건을 느꼈다. 모조리 흡수할 것 처럼 철벅철벅 치대가는 허벅지는 짓물날 것 처럼 화끈거렸다.

남자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줬다. 흐르는 거였네. 딴 놈들은 좋다고 더 울려준다 하길래 저절로 눈물이 쏙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아무 말도 없이 호석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눈물만 닦아주더니 사정의 기미도 없이 갑자기 한껏 쏟아냈다.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는 섹스는 끝이났다. 호석은 잃을 게 없었지만 또 모든 걸 잃은 느낌이 들어서 멍청히 바닥에 앉아서 처참한 아래를 가릴 생각도 못하고 널부러져있었다.




3.

사모님이 내 엄마였다는 말이 무슨 전래동화에 나오는 얼토당토 안하는 말인 것 처럼 호석은 테이블 앞에 날카로운 눈을 한 그녀를 멍하게 쳐다봤다. 애새끼 둘만 남겨두고 신기루같이 떠났던 창촌 여자가 여기에 다시 신기루처럼 앞에 있네. 반가운건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운 건 맞긴 한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호인이는 어디에 있니?"
"죽었어요."

어린 애를 그렇게 버리고 갔으니 애새끼가 심장병이 있는지 아닌지 몰랐을게 분명했다. 그러나 호석은 여자를 원망하지 않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나간것이라고 깔끔하게 치더라도 제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는 동생이 죽었다는 호석의 말을 듣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기억속의 작은 어린아이일뿐인 동생을 회상하는건지 아닌건지 잘 몰라서 앞에 있는 커피만 들이켰다. 이제야 엄마노릇 한다고 해도 면죄부가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도 아주 잘 알고 있을거라고 호석은 마음대로 단정지었다. 비어버린 눈을 하고 그녀의 옆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제가 별거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사건의 연속이라 그런지 제가 무슨 주인공마냥 시간을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저 남자는 이름이 뭐에요? 호석이 태연하게 묻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김석진.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왔다가 뚝 떨어졌다.

"이제부터 이 집에서 살게 될거다."
"곰팡이 냄새가 더 좋아서요."
"..."

그녀는 호석을 경멸한다는듯 노려봤다. 정말 창촌의 곰팡이냄새가 더 좋았다. 태어나길 창촌에서 태어난 걸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니 호석은 숨김없이 표현했다. 결국엔 당신도 창촌에서 남자받는 년 중에 한 명이었는걸 똑같은 수순을 밟고 악착같이 숨쉬고 있는 저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호석이 웃었다. 돌아가고싶어요. 만나주긴 했으니 뭐라고 하지 마요. 여자에게 하는 말 인지 옆에 선 그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짓거리고 일어섰다.

창촌을 전부 합해도 비할것이 못되는 큰 집을 나오니 숨이 트여서 괜히 가슴만 쿵쿵 쳤다. 인생에서 큰 오점일 뿐인 자신이 피해준다며 나서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창촌에서 그나마 고등학교까지 나온 년이 저를 가르쳐준답시고 알밤만 맥일 때 그나마 배운 상식이라는게 그냥 인생에서 꺼져달라고 찾아온 사람은 변명말고 꺼지라는 것 밖에 없었지만 호석은 나름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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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ip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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