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조우










지민은 창 밖으로 보이는 벤이라는 남자의 눈빛 때문이라도 이 훈련시간이 좀 빨리 지나갔으면 싶었다. 아직까지 더 때려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는지 유독 지민의 주변을 맴도는게 신경에 거슬렸다. 필리아에 잠복중 소속을 들켜 탈출하다 왼쪽 손목이 깨끗하게 날아갔다 들었는데 잘려나간 손목을 찾지 못해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해서 꽤 필리아에 악의를 품고 있어 보였다. 현재는 작전 지시본부에서 보조로 일하고 있다던데, 폴의 팀원인 샌디가 첫만남에서 잔뜩 경계하는 지민을 탐탁치 않아해 부러 벤에게 지민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했다. 그냥 욕이나 몇마디 해 줄 것 처럼 굴길래 알려줬을 뿐이라며 다짜고짜 주먹질 당할 줄 몰랐다고 지민에게 사과하긴 했지만. 지민은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그를 지나쳤다. 더이상의 접촉은 싫었다.

지민은 제게 팔을 휘두르는 딜런을 허리를 꺾어 피한 후에 그의 오금을 발로 내려찍고 목을 휘감았다. 실전이었다면 딜런은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을 것이다. 팀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지민의 몸짓을 관찰했다. 딜런도 지민에게 하마터면 죽을 뻔 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민이 제 페이스가 아닌 상태에서 이 정도라니. 지금껏 자신들이 훈련받아온 것이 모조리 짓밟히는 기분이었으리라. 지민이 시원찮은 표정으로 딜런을 놓아주자 잔뜩 긴장한 딜런이 욕을 중얼거리며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빙글빙글 풀었다. 딜런보다 머리가 두개나 차이날 만큼 작은 키의 동양인이 단번에 190이 넘는 거구를 넘겼다? 먼저 싸움을 걸었던 벤이 그 날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호석은 굳은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보다 차트를 작성했다. 제가 관찰했던 파이 트룰린의 실력과 얼추 비슷했다. 필리아에 소속되어있던 기간이 비교적 짧았지만 지민은 유연함으로 공격을 피해 반격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월등했다. 지민이 무용을 배우면서 익혔던 유연함과 신체이용능력을 다른곳에 쓸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호석이 태형과 헤어진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민의 실력은 바로 작전에 투입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충분했다.

"괜히 필리아가 아니군."

샌디의 말에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지민이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말해두지만 필리아라고 계속 짓거리지마. 그 경고에 샌디가 입을 꾸욱 닫았다. 아마 시비걸어봤자 얻는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필리아라는 벽이 가지고 오는 거리감은 그나마 이곳에 온 지민에게 산소통같은 존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적으로 훈련을 좀 부탁해도 될까?"
"상관 없어. 훈련외에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딜런은 지민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아마 실력으로는 헤이즈와 비슷할거라며 나름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를 한 번 본적은 있지만 딱히 좋은 인상은 아니라 괜히 부딪히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 했다. 지민을 뺀 나머지는 각자 훈련을 위해 사라졌지만 호석은 지민을 개인적으로 호출했다. 지민이 그의 개인사무실로 따라들어오자 호석이 그의 책상 위에 있던 보고서를 건내주었다.

"우리쪽에서 유스를 감시하던 요원이 있어."
"...그래서?"
"유스가 자취를 감췄어."
"..."
"필리아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유스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그것은 그가 더이상 필리아에게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었다. 지민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석진이 찍힌 사진들을 한장한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지민이 모르는 자와 함께 있는 사진에서 풍기는 석진 특유의 분위기에 지민은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다다르자 지민은 석진과 함께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필리아에서 훈련을 담당했던 사토우라는 한국계 일본인 간부야. 외부에 노출된 적은 없고 사이먼과 엘레나가 죽은 이후 갑자기 종적을 감췄어."
"..."
"나를 훈련시켰던 자야. 그리고 얼마 전까지 내 뒤를 쫓았던 남자고."

그가 기억이 조금 돌아왔다는 것을 사토우에게 들킨건가? 지민은 그가 자신을 찾아온 것 때문에 기억의 일부분을 되찾았다고 여긴 사토우가 석진을 끌고 갔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기억의 일부분을 떠올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다시 그곳으로 끌려가게 만든 것도 전부 자신이라는 죄책감에 눈 앞이 아찔했다. 호석은 굳이 묻지 않아도 지민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민이 무의식적으로 호석의 얼굴을 응시하자 이제 망설이지 않아도 목적이 생겼냐는 물음을 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꽤나 이기적인 얼굴이라서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너희들이 그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방법은 한가지 뿐이라는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닥쳐."
"죽거나 죽이거나라는 걸 왜 외면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비밀같은 거라도 숨기고 있나? 그런게 있었다면 모를까 이렇게까지 평생 도망쳐다니는건데. 호석의 물음에 지민이 머리를 붙잡고 망설였다. 우린 맞서 싸우지 않아도 필리아에게 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 어쩌면 녀석들이 우릴 봐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도망가는 행동패턴까지 분석해서 훈련시키는 놈들을 우리가 무슨 수로 완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놈들은 우릴 단번에 굴복시킬 수 있어."
"뭐?"
"믿기지 않겠지만 우린 특정한 주파수에 반응해. 작게는 정신교란을 하거나 심하면 기억의 일부를 지우거나 새로운 기억으로 채울 수 있다는 소리야."
"..."
"왜 지금까지 필리아에 스파이로 들어갔던 전문 요원들이 쉽게 죽거나 실종됐는지 모르겠어? 필리아에 들어간 순간 특정주파수에 반응하는 물질을 주입받는다고. 아마 그들은 죽지 않고 기억을 조종당해 평생을 필리아에 몸담고 있겠지."
"..."
"그게 우리가 계속 도망치는 이유야. 사이먼과 파이는 유일하게 그걸 알아채고 먼저 도망쳐나왔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어. 주파수 발생장치를 가지고 있는 놈들과 가까이 있기만 하면 우린 끝장이라고."

필리아는 그런것들을 연구하는 곳이야. 단순히 뒷세계 앞잡이 노릇만 하는게 아니라고. 지민이 2년 만에 전혀 다른사람처럼 살인기술에 최적화가 된 것도 전부 필리아의 과학 기술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이탈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필리아의 비밀을 들은 호석도 그 아무나가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2년동안 줄곧 트룰린들과 생활했던 이력 때문인지 반 정도는 믿는 표정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로 사람의 운명과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알면 과연 제정신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가 당장 회의론자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이먼이 죽기 전에 왜 항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제야 알겠다는 듯 호석이 가만히 고민에 빠졌다. 지민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 이유를 왜 이제야 말해줬냐 따지고 싶었지만 믿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고개를 내저은 호석이 한숨을 쉬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놈들의 실력이 어느정도까지 뛰어나게 됐을 지는 모르겠어. 차라리 주파수를 추적해보는 게 빨라."
"...안그래도 널 보내진 않을거야. 치료가 끝나면 그때 움직이도록 해."
"..."
"...은혜를 이렇게 갚는군."

마지막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누가 누구에게 빚졌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물음은 호석의 얼굴을 보자 삼켜졌다. 물어본다고 한들 알려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궁금해하고싶지 않았다. 지민은 호석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오면서 그의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동료들의 사진을 보았다. 들어설 때는 보이지 않지만 호석이 앉은 자리에서 항상 보이는 자리에 걸어둔 사진속의 호석은 꽤나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웃고 있어서 입 안이 썼다. 그는 항상 이 사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겠지. 동질감따위는 느끼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










"로이가 온 이후로 필리아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벤이 이상한 소문을 떠들어대고 있어. 사실이 아니라는거 알지만 아마 다들 좋게 보진 않을거야."
"상관 없어."
"난 팀원으로서..."

오늘도 역시 말라비틀어진것 같은 모양새를 한 샌디가 욱하려다 딜런에게 저지당했다. 자신과 연관 없다 잡아떼진 못하게 된 입장이라 상관없다고 한 건데 듣는 놈들은 지민이 무시해버린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실 가장 신경 쓰는 쪽은 이쪽일텐데. 피식 웃으며 짐을 꾸렸다. 치료를 몇 번 남기지 않은 상태로 팀원들과 함께 필리아의 동부 기지로 향할 준비를 했다.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지민은 더욱 신경써야 했지만 전방에 서지 못하고 후방 지원으로 빠졌다. 전방에 서게 된 딜런과 폴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둘이 이 중에서 가장 손발이 맞는 파트너라고 했다. 한동안 지민에게 훈련받은 딜런은 비교적 몸놀림과 대처가 재빨라졌지만 필리아놈들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실력이었다.

필리아놈들은 정부에게 필요악이긴 하지만 국가에 위협이 되는 일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들은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체실험의 산물이 바로 자기가 아니던가. 지민은 이상할거 없다면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거라 생각했다. 아마 지금쯤은 더 발전된 놈들이 나올거라 예상하고 있어야 했다. 지민의 행동특성에 맞는 전투 수트를 입은 모양새가 제법 안정감 있었다. 필리아에서 스나이퍼를 다뤘던 경력이 있어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스나이퍼를 받아들었다.

군용헬기에 올라타며 한 번 뒤돌아 본 곳은 아무도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폴이 계속해서 지민을 흘깃거렸다. 친해졌다고는 하나 쉽게 말걸지 못하는 듯 했다.

"당황하거나 망설이면 그대로 죽어. 난 항상 그렇게 훈련받아왔으니 아마 놈들도 훈련받은 대로 달려들거야."
"..."
"나도 그럴거고."

사토우와 같은 말을 짓거릴 줄은. 하지만 놈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생각방식을 동일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다. 아예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전직 필리아요원도 함께 싸우는데 못할게 뭐가있냐던 샌디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말을 한 놈은 태평한 표정으로 딜런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옆으로 헤이즈와 호석은 장비를 마지막까지 점검하며 동선을 체크중이었다. 클립토의 동부 기지에 도착해서 모든 훈련을 다시 확인하고 발생할 모든 상황에 대해서 숙지하는 교육을 받게 된다. 지민은 제가 기억하는 필리아의 모든 정보들을 클립토에게 제공했다.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은 필리아에서. 이제 지민이 되돌려 줄 차례였다.

"난 처음부터 로이가 그녀석들이랑 같을거라고 생각 안 했어."
"...왜?"
"그냥...느낌이지 뭐."

첫만남부터 발길질이었던 둘 사이에서 뭘 느꼈다는건지. 지민과 폴은 첫대면부터 서로를 죽일듯 싸웠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지냈다. 서로 쿨하게 넘기면서도 폴이 유달리 지민을 챙기는 듯 했다. 샌디와 딜런은 작은 놈들끼리 유대감을 느끼는거라며 지민을 살살 긁었지만 폴은 그냥 웃어넘기기만 했다.

군용헬기가 동부 기지 전용 헬기장에 안착했다. 제 물건들을 챙기며 내릴 준비를 하는 지민에게 다가온 호석이 탐탁치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부 놈들은 우리들을 아주 싫어해. 거기다 필리아에서 왔다는 네가 놈들의 신경을 건들면 벤처럼 달려드는 일이 허다할거야. 절대 휘말리지 마. 처음 동부로 간다고 결정되었을 때 팀원들의 표정이 못먹을 걸 먹은 표정이더라니. 지민이 대답대신 제 짐가방을 한 번 들어보였다. 어찌됐건 동부기지 녀석들의 지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니 피할 곳이 없었다.

"어이, 필리아 졸개들 오신다."
"저 작은 놈이 필리아 출신 맞아? 별볼일 없게 생겼네."

익숙한 웅성거림을 들으며 중앙으로 향했다. 딜런과 샌디는 잔뜩 짜증난다는듯한 표정이었고 폴은 아예 헤드셋으로 음악을듣고 있었다. 얼마나 궁시렁대는지, 지민도 폴에게 부탁해서 헤드셋 하나를 얻어올걸 후회할 지경이었다. 요즘 부쩍 청각에 예민해진 지민이 얼굴을 굳히며 호석의 뒤에 붙어가자 놈들은 킬킬거리며 손가락질했다. 계집애 처럼 생겨서 주먹하나 잘 쓸지 모르겠다고 창부아니냐며 엉덩이를 흔드는 시늉을 했다. 녀석들은 시비를 거는 레퍼토리가 비슷해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지민의 앞에 선 놈들은 비켜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켜."

지민의 옆에 선 호석이 경고했다. 조심해야 한다며 당부하던 호석도 이 이상은 봐줄 수 없는지 으르렁대며 앞서나왔다.

"네 동료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도 벌써 잊었나봐? 네 녀석이 무엇보다 싫어하던 놈이랑 손까지 잡다니. 제이도 이제 별볼 일 없나봐."
"할 말 없으니 비켜."
"배신자 새끼. 몇 년을 그놈들이랑 같이 다니더니 너도 물들은 게 분명해."

호석은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와서 같은 취급 당하는게 분했지만 지민이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한다면 마지막 카드마저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최대한 놈들 심기는 건들지 않도록 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놈들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무식한 근육덩어리 새끼들이라는 별명이 붙지. 놈들이 들으면 당장 달려들 것 같아 말을 아끼지만 그것도 부족한 놈들이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난 너희들을 도우러 온 게 아니야. 난 내 목적만 달성하면 필리아 따위 어떻게 돼도 상관 없으니 잠시 협력하는 관계지, 저 자식이 나랑 손을 잡던 말던 상관없어."
"로이."
"대신 저렇게 좆같이 내 이름을 함부르 부르는 것도 참고 있으니까 자리에서 비켜. 영원히 원망도 못하게 만들어주기 전에."

호석이 한숨을 쉬었다. 지민이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자길 생각해주는 건 받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충분히 신빙성 있는 말에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짜증이 났다. 지민이 말하지 않아도 아마 팀 내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존재 이유는 무시할 수 없었다. 호석이 자리를 피하자 각자가 전부 그들을 지나치며 한마디씩 했다. 오랜만에 벙찐 모습을 다 보겠다며 잘했다고 통쾌해하는 샌디와 그런 그를 대단하다며 보는 딜런은 아무생각 없어보였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지민을 훑는 헤이즈는 아마 지민에대한 경계를 풀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내 본 모습이 아직 나약해 빠진 사람이란 것을 모르니까 그런 눈을 할 수 있겠지. 만약 얼마나 살아남기 위해 치졸하게 발버둥치고 있는지 알게된다면 달라질게 뻔했다. 지민은 훈련을 받아오면서, 약함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과 모든 관계에서의 두려움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만들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왔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꼴은 누가봐도 불쌍했다. 여기에서 가장 더러운 건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일말의 믿음으로 버텨낸다는 것이었다.






"벤, 정신적으로 상담한 번 받아봐. 어? 네녀석이 자꾸 이상한 소문같은 걸 짓거리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다시는 돌아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줄테니까!"
"..."
"이번 일은 꼭 책임을 물을테니 해명을 하던지, 로이에게 찾아가 사과해."

걱정해주는거야? 호석의 침대에 앉은 지민이 피식 웃었다. 전화를 끊은 호석이 그를 힐끔 노려보더니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했다. 임무에 피해를 끼칠거라 판단한것 뿐이야. 간단하다는 듯 대답하며 왜 여기왔냔 눈으로 쳐다보자 지민이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놈들이 날 찾는 건 아니겠지? 지민이 말하는 놈들은 당연히 정해져있다는 걸 알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는 호석을 보니 꽤 긴장됐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걸 아는 주제에 물어보는 게 구차했지만.

"신경쓰지 않는 편이 좋아."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아직 그 두녀석들이 살아있다는 정도니까. 지민은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는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견디지 못할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으니까.















이주 간 동부기지에 적응훈련을 마친 팀원들과 지원병들이 헬기에 다시 올랐다. 다른 임무를 맡고 있는 상당수의 요원들을 제외하고 어림잡아 스무 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동료들이 탄 헬기가 선두를 쫓아 가는 것을 확인한 조종사가 이륙시도를 했다. 동부요원 다섯과 딜런, 폴이 탄 선두 헬기가 먼저 창륙과 동시에 주위 수색에 나섰다. 주위 건물로 스며들듯 자리잡은 요원들이 전방 건물을 주시했다. 필리아와 접촉이 있을거라는 놈들이 자기들을 지켜달라나 뭐라나. 모종의 거래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침투해 놈들을 생포하고 주파수 발생기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넌 뒤에서 대기해."
"..."

선발대와 함께하려던 지민이 고개를 돌렸다. 호석이 마지막까지 뒤를 돌아보며 마치 네 자리는 여기까지야. 라는 듯 확인사살용 눈빛을 쏘아댔다.

"나름 생각이 있겠지."

샌디가 나른하게 중얼거렸지만 절대 놈들이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지민이 초조한듯 대기하면서 절대 실패로 끝나지 않길 빌었다. 딜런과 폴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음성과 신호로 사인을 주고받았는데 지민이 생각했던 것 만큼 필리아요원들이 적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온도감지 센서에 포착된 여럿이 줄지어 나가는 것을 확인한 폴이 빠른 속도로 입구에 있던 놈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전투요원이 아닌 요원들은 기껏 해봤자 기본적인 전투기술만 배웠으니 쉽게 제압될거라는 지민의 말을 따랐다. 조금의 반항을 끝으로 목이 반대로 꺾인 시체 한 구가 바닥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폴이 전기신호로 클리어했다는 신호를 보내자 샌디가 신이 난 듯 휘파람을 불었다.

동부에 있는 주파수 발생기가 목적이었지만 아마 그것은 연구실 내부에 있을 게 분명했다. 생체실험과 더불어 모든 실험들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경계가 살벌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단번에 필리아의 기지까지 쳐들어 온 것을 그들이 알면 눈에 불을 켜고 내부고발자를 찾거나 다른 기지들의 위치를 바꾸려들겠지. 지민은 그 타이밍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잠깐만, 딜런은? 딜런의 연결이 끊겼어."
"젠장. 연결시도는 다시 해봤어?"
"아예 박살난 것 같은데."

호석이 욕을 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뒤를 쫓은 지민이 위치추적장치를 물었다. 요원하나가 GPS가 잡히지만 전파를 방해하는건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고 했다. 호석과 헤이즈를 따라 후발대를 쫓아 들어가기 시작한 지민이 작게 심호흡했다. 얼굴을 가리듯 쓴 고글이 제발 제 신분을 감춰주길 바라며 빠르게 내부로 진입했다. 딜런이 위험한 것 치고는 내부 상황은 조용했다. 그의 실수로 꺼진 것일까?

- 교전중. 지원바람.

연구실 앞으로 향하던 호석이 돌아섰다. 폴이 신호를 보낸 쪽으로 샌디와 지민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내부환경에 어느정도 익숙한 지민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민이 빠르게 폴의 위치로 향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웠다. 아마 그들과 싸우게된다면 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지민과 샌디의 수신장치로 폴의 목소리가 들렸다. 딜런! 딜런...이 개새끼가!

"폴. 조금만 기다려."
- 시발!!!

폴이 도대체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샌디가 먼저 정신없이 방어중인 폴을 발견했지만 그는 이미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 있었다. 아수라장 속에 있었지만 지민을 비롯한 훈련받은 요원들은 근접전에 능하기 때문에 폴에게 바짝 다가서 있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어 공격하는 상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샌디가 폴의 목을 조르는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쉽게 풀어버린 남자가 샌디의 옆구리를 공격했지만 폴이 바닥에 나뒹굴며 동시에 남자의 발을 걸었다. 순식간에 넘어진 남자의 목을 비틀어 숨통을 끊어놓은 폴이 가쁜숨을 내쉬며 휘청거렸다. 지민이 죽은 남자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훈련을 그렇게 많이 받지 못한 놈이야.

폴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딜런은? 딜런이 보이지 않자 샌디가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일었다. 딜런이 끌려갔나? 샌디가 주위를 살피자 눈을 감고 있던 폴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맞아."

놈들이 눈치챈건지 주변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건물 외벽에 붙어있던 셋이 경계하며 숨죽였다. 여럿이 지나다니는 발소리를 듣다 꼼짝 없이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셋은 임무가 어찌됐든 원칙상 빠져나가야 했다. 지민이 선두로 빠져나갈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전파 방해로 작동이 멈췄던 수신기가 잠시 돌아왔다. 계속해서 끊기긴 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동부기지 서쪽 부근이다. 지원 요청한다. 샌디, 폴과 함께 있다."
- 로이?
"..."
- 로이? 놈들에게 빠져나와서 제이와 함께 그쪽으로 가고 있다.

지민이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물고 있는 폴을 슬쩍 쳐다봤다. 딜런의 목소리였다. 그의 등 뒤에서는 계속해서 분노하는 샌디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셋이서 어떻게 탈출하냐는 둥, 여기서 얼마 버티지 못할거라는둥.

- 우리가 올 때까지 대기해.
"..."
- 어떻게든 갈테니까.

지민이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제 목을 향해 오던 손을 피했다. 로이? 지민의 수신기에서 들리는 딜런의 목소리가 지민을 찾았다. 지금 무슨 문제 있나? 정신을 잃은 샌디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빠른 몸짓으로 공격해오는 놈을 가까스로 피한 지민과 폴이 한 놈의 옆구리를 차며 멀어졌다. 눈매를 날카롭게 번뜩인 놈이 지민에게 달려들자 다시 반격하던 지민이 그의 표정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미 그라는 것을 알고있는 듯 했다. 지민이 폴을 싸고돌듯 공격하자 다른 놈이 폴을 죽이려 달려들었다. 움직임을 보아하니 제대로 훈련받은 놈이었다.

- 도착 3분 전.
"팀원들이 이 꼴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네."

지민이 폴의 눈에 망설임을 읽고 폴에게 달려드는 놈의 어깨를 내려쳤다. 동시에 공격받은 지민의 배를 감싸쥐며 뒹굴었다. 그는 망설인 것 치고는 꽤나 억울한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지. 망설이면 죽는다고! 지민이 소리치자 폴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샌디를 죽이려하는 놈의 가슴을 걷어찼다. 말은 없었지만 폴이 계속해서 두려워 했다간 지민이 놈 둘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 헬기가 침투해서 들어올거야. 준비해. 빠져나갈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

널부러진 통신기 사이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주위는 총성으로 가득했다. 지민이 한참을 놈과 교전하고 있는데 그의 옆구리로 총알이 날아들어왔다. 스쳐지나간 여파로 옷이 찢어지고 피가 옷을 적시며 흘렀다. 폴이 고개를 크게 돌리며 총을 쏜 인물을 찾는데 한눈판 사이에 발이 날아들어와 팔을 교차하며 막았다. 놈이 다시 총을 쏘려 조준하는 듯 하자 목표를 지민으로 잡은 놈의 제스쳐에 순식간에 자길 공격하고 있는 놈의 팔을 꺾어 방향을 틀고는 지민의 앞으로 밀어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놈은 중심을 잃고 휘청이자 큰 총성이 들리며 얼굴에 구멍이 난 채로 송장이 되어 쓰러졌다. 바로 지민과 교전중인 놈을 피한 둘은 샌디가 벽 뒤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놈들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어 근접전은 사실상 무리였지만 싸움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근처로 헬기소리가 들렸다. 주위가 더욱 소란스러워지며 총소리가 더욱거셌다. 고마워. 폴에게 짧게 소리낸 지민이 고개를 다시 돌려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열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호석을 보자마자 정해진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확인했다.

"놈들이 반대편에서 밀려오고 있다."

셋이 숨어있는 곳을 중심으로 서로 대치한 두 집단이 서로를 잡아먹을 것 처럼 서 있었다. 한 놈의 총성이 시작되자 총알이 사방에서 계속됐다. 그들에게로 호석과 딜런이 다가섰다. 샌디가 정신을 못차리는 걸 확인하고 그를 가뿐하게 어깨에 들처업은 딜런이 호석과 함께 먼저 헬기에 올라탔다.

"주파수 발생기는?"
"정확하진 않지만 확보했어. 이번에 수확이 많아."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폴을 먼저 헬기에 오르게 한 지민이 헬기 입구에 앉은 놈의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자길 조준하고 있던 놈들의 머리통을 쐈다. 사격을 훈련받았지만 몇 년만에 쏴본 것 치고는 꽤 정확했다. 지민이 뒷걸음질치며 헬기에 올라서려하자 헬기가 지민을 신경쓰지않고 출발했다. 폴이 놀라 조종사에게 소리치는 걸 보던 지민이 그나마 매달리던 한쪽 손을 놓지 않으며 있자 그때 헤이즈의 손이 지민에게 뻗어왔다.

"너무 원망은 하지 마."
"..."
"그 때랑은 다르니까."

지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놈이 선택한 건 지민이 손을 놓게 하는 것이었다. 높이가 높지 않았지만 지민을 적장 한가운데에 떨어트리겠다는 소리였다. 수신기가 치직거리다 맥없이 꺼졌다. 지민이 허탈하게 웃더니 제 수트에 붙어있는 장치를 보고 욕을 중얼거렸다.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처음부터 날 믿지 않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줄은. 지민이 어깨에 붙어있던 기기를 떼어내려 손을 뻗는 순간 온 몸에 전류가 흐르며 순식간에 정신을 잃은 지민이 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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